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경자

수필가

국지성 폭우가 연일 퍼붓는다. 마치 하늘에서 바가지로 물을 마구 퍼 붓는 것처럼 내리는 폭우다. 장마전선은 남부지방부터 중부지방까지 오르내리며 곳곳에 피해를 주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마가 야속하다. 밤새 내린 비에 무심천이 무사한지 궁금하여 현관을 나섰다. 남달리 무심천에 관심을 갖는 것은 70년대부터 수곡동 무심천변 제방 밑에서 살았다. 매일 출퇴근 할 때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다 보니 정이든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무심천변의 둑은 낮고 허술하여 둑이 터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 생각이 잠재 되어서인지 장마 때가 되면 무심천이 궁금해 나가 보는 버릇이 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구대교 중앙까지 가서 상 하류를 바라보니 하상차도는 물에 잠겨있고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 듯했다. 아찔한 생각에 곧바로 사직 사거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굵은 빗줄기는 점점 세차게 내려 우산 안에도 빗물이 뚝뚝 떨어져 옷이 다 젖을 정도다. 길바닥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빗물은 낮은 곳으로 콸콸 내려갔다.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켜니 뉴스 속보다. 미호천이 범람하여 제방이 무너져 오전 8시 40분쯤 흥덕구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 흙탕물이 노도같이 밀려와 꽉 찼단다. 그때 마침 지나던 17대의 차량이 물속에 갇혔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인명 피해는 얼마나 클까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해졌다. 뉴스 속보를 보는 중에도 연신 핸드폰에는 '비 피해 없도록 사전 준비 잘하라'는 문자와 현재 상황을 수시로 날아들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높은 지대에 있는 아파트라서 안심이 좀 되었지만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지금부터 43년 전 7월 22일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아침서부터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 치며 쏟아지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하늘이 뚫린 것 같았다. 보은 동광 초에서 교사지도기능을 끝내고 나오니 운동장과 학교주변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차도로 나와 친정집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오기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집 가까운 도로에서 내렸다.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빠르게 걸어가 다리 앞에 섰다. 다리위로 찰랑찰랑 차오르는 물을 첨벙첨벙 디디며 바삐 다리를 건너가 제방에 서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았다. 있던 다리는 온데간데없고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결만 산처럼 솟아올랐다. 그것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아찔하여 한숨을 길게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그리 겁 없이 행동했는지 지금도 두 다리가 움찔해진다. 고개를 돌려 친정집을 바라보니 엄청난 흙탕물이 마당 가득 넘쳐 웬일인가 싶었다. 황급히 달려가 보니 산사태가 나서 담장을 넘어뜨리고 마당으로 밀려드는 상황이다. 부모님을 부르며 빨리 피해야 된다는 소리에 부모님이 마당으로 내려서는 순간 집이 와그르 무너졌다. 다행이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살림살이와 장독은 물론 광에 있던 양식까지도 남김없이 수마가 휩쓸어갔다. 친정집뿐만 아니라 보은군 전체를 수마가 핥고 간 모습은 허접스러운 몰골만 앙상하게 남아 참혹하고 허탈하기만 했다. 피해가 막심하고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그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피해 복구를 하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누구나 무슨 일이든지 겪어보지 않고 진정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목숨을 잃은 분들 중에는 결혼 2개월째인 신혼부부, 시험치러가다가 변을 당한 젊은이, 휴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청소 일하러 출근길에 오른 분들, 재가 방문 요양보호사, 카플로 출근하는 치과 의사도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이 솟는다.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유가족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귀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