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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 교장

새해 첫 날, 산책을 가자는 남편의 말에 얼른 미세먼지 농도를 살펴보았다. 나가기 싫을 때 써 먹기 좋은 핑계거리이다. 보통이다. 이렇게 추운데 어딜 가냐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망한 남편은 대학 졸업반 둘째 딸을 쳐다본다. 딸아이는 엄마한테 거절당한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쳐다보는 남편과 눈이 마주친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파트를 나서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멈추었어야 했다. 평소와 다른 산책길도 문제였다. 남편은 곧장 무심천으로 향하지 않고 남쪽으로 코스를 정했다. 이곳에 이런 건물이 있다니! 놀라며 돌아보는데 어디선가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슬며시 옆에 있는 딸아이에게로 가더니 발을 못 뗄 정도로 딱 달라붙어서 귀염을 떤다.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일까·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동물사랑이 남달랐다. 책을 사도 동물, 그림을 그려도 고양이, 강아지 등을 그렸다. 심지어 고 3때에도 고슴도치를 살뜰히 돌보며 수험생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자취방에 햄스터를 키우고 있다.

새해 첫날이고 이 추위에 길고양이가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딸은 고양이가 안쓰럽다며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와 놀아주느라 한참을 그렇게 떠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 예쁜 아기 길고양이를 만났는데 추운 겨울이어서 안타까워서 같이 놀아주었다. 정도로 마무리 하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그 다음은 상황이 달랐다.

무심천 산책로로 접어들어 새로 생긴 아파트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저게 뭐지· 갈대숲 앞에 작은 가방 하나와 사료 봉지가 놓여 있었다. 그 속에는 고양이가 웅크리고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메모가 있었다. "필요하신 분 가져다 키우세요." 어쩌란 말이냐! 새해 첫 날 영하의 기온에 눈까지 내리는데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그렇게 원해도 강아지와 고양이는 키우지 못하게 했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산책길은 중단되었다. 딸은 또 고양이 앞에 앉았다. 진짜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자며 등을 떠밀다시피 계속 걸음을 재촉했지만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들의 마음도 한 없이 무거웠고 더 이상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딸아이는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저녁식사 후 남편이 먼저 운동을 가고 나도 뒤따라 나섰다. 온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고양이의 눈빛과 딸아이의 눈물이 어깨를 짓눌러서 일까· 아무래도 무심천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체육관을 지나쳐 무심천을 향해 가면서 제발 그 장소에 고양이가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만약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기동물 보호소를 갖다 줄까, 학교에서 키울까, SNS로 키울 만한 사람을 찾아줄까. 그 장소가 가까워졌을 때 떨리기까지 했다.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데려갔나 보다. 키울 용기도 없고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나도 그렇게까지 마음 아팠는데 딸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어 얼른 전화했다. 울먹이며 '다행이다. 다행이야.'라고 했다. 이렇게 해프닝은 끝났다.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아프다. 누가 데려갔는지 모르지만 고마운 분께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새해 첫 날 버려진 그 고양이로 인해 그 길을 오고 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 했을까· 끝까지 책임질 마음의 준비와 능력이 없어 두고 온 그 고양이들이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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