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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선배 교장선생님들의 퇴임 축하 모임이 있었다. 여러 행사 중 축하 무대를 꾸며준 후배 교사들의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축가를 부탁하고 어떤 곡을 준비했을까 궁금했는데 제목을 듣는 순간 '그래, 바로 이 노래야.' 했다.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에서 조승우가 부른 「지금 이 순간」이었다.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이 이뤄질지 몰라. 참아온 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 간다. 연기처럼 멀리~" 한 구절 한 구절 가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들었다. 긴 세월 교직의 길을 걸어오신 선배님들의 지금 이 순간은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꿈을 이룬 순간일까? 힘겹게 참아온 일들이 사라지는 순간일까?

예전엔 아직도 너무 젊으신데 떠나야만 하는 선배님들을 보며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었다. 지금 이 순간은 교직을 떠나 새롭게 걸어갈 길에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부러움이 더 크다. 내가 바뀐 건지,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건지 애써 웃어보지만, 달라진 세월에 허탈함이 머문다.

노래를 듣는 내내 선배님들의 교직 생활의 궤적들이 그려졌고, 끝을 향해 걸어가는 나와 이제 시작하는 후배들이 걸어갈 미래의 순간들을 상상하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다음 날 인근 절에서 주지 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공교롭게도 강의의 주제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있지나 않은지, 겪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라고 하셨다. 사람들의 걱정은 90%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며,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여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어제의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언제 끝을 보고 달려왔나!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 않은가! 힘겨웠던 날도 있었고 참아야 했던 일도 많았지만, 걱정의 크기만큼 어려웠던 일은 없었다. 미래를 위해 힘든 날을 참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즐기며 최선을 다했던 거였다. 그 속에서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보람도 많았다. 나의 삶의 순간에는 늘 아이들의 시간이 함께 했다. 아이들의 삶에 등불이 되고 디딤돌이 되며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가졌다기보다는 내가 맡은 40명의 소중한 순간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3월이다. 학교는 새로운 순간을 맞이했다. 새 학년을 준비할 때마다 교육공동체 모두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이끌지만, 오늘의 행복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 행복한 삶의 여정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행복한 학교였으면 좋겠다. 어떻게· 별거 없다. 아이들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오늘,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약간의 불안과 떨림 그리고 상당히 많은 기대감으로 설렌다. 시작으로부터 이만큼 걸어온 나의 이 순간도, 언젠가 맞이할 그 순간에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연기처럼 멀리 날려 보내도 편안한 마음일 테니 걱정은 내려놓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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