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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학교 주변 교통이 복잡하고 위험하다 보니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가정이 많다. 특히 학기 초에는 주차장이 정말 어수선하다. 저학년 학부모들은 차를 세워놓고 아이 손을 잡고 교실까지 간다거나 아이가 눈앞에서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다 차를 출발하는 사람도 많다. 되도록 아이들이 혼자 교실로 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도 잘 안된다. 통로를 가로막고 차를 세워놓는 사람이 있는 날이면 주차장은 전쟁터 같다.

입학식 다음 날, 아침 교통지도를 하며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에서 방금 내린 한 아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새 책가방을 멘 것을 보니 1학년이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 추운데 빨리 교실로 들어가지 왜 저렇게 두리번거리나 궁금했다.

"얘야, 추워. 얼른 교실로 들어가자."하고 다가갔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저 길을 잃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길을 잃었단다.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중앙현관을 향해 쭉 걸어가고 있는데 이 아이는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무릎을 굽히고 학교 건물을 바라봤다. 학생이 뒤섞여 정신없는 넓은 운동장, 거대한 학교 건물을 키 작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무척 거대하게 느껴졌다. 주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다 처음 학교에 온 학생에게는 무척 낯선 풍경일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입학식에는 부모의 손을 붙잡고 강당으로 바로 올라갔다가 담임선생님들이 교실로 인솔했으니 교실로 가는 동선도 달라졌다. 길을 잃었다는 아이의 말에 공감이 갔다.

"1학년 몇 반이니? 교장 선생님이 도와줄게." 지나가는 3학년 학생을 불러 손을 잡고 교실로 데려다주게 했다. 아이는 이제야 안심한 듯 쭐레쭐레 언니를 따라갔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영리하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두렵고, 낯선 공간에 가면 어리둥절할 거다. 그래서인지 입학생 중 몇몇은 부모와 떨어지기 싫다고 운동장이나 현관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새로운 공간에 금방 적응한다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차에서 내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가장 큰 일이고 보람된 일이라고 한다. 길을 잃은 아이의 경우처럼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교실까지 잘 찾아간 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면 되는 일이다. 또 그런 일이 발생할까 봐 몇 날이고 아이들 바래다주기 시작하면 의존적인 아이가 되기에 십상이다.

오늘 길을 잃은 아이는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 잘도 갈 거다. 부모가 한 번 더 믿어주고 격려해주면 말이다. 다만 부모도 학교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여야 함을 인지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일을 배려하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이렇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부족했음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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