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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사람을 잘 기억해야 성공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난 성공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생체시계와 기억 능력은 줄어들며 뇌의 작동속도 또한 느려진다더니 요즘 나의 상태다. 분명 아는 사람인데 이름과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순간 당황하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 닭발 모임에서 위로를 받았다.

닭발 모임은 작년 연말 산악회 파랑새 총무님의 저녁 초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선약이 있어 저녁 식사 후 뒤늦게 합류했다. 함께 참석한 등대님과 남편은 닭발을 맛보라고 권했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거절하는데도 꼭 먹이고야 말겠다는 표정으로 닭발 접시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마지못해 뼈 있는 닭발 한 개를 입에 넣은 순간 나도 모르게 밥상을 당겨 앉았다. 너무 맵지도 달지도 않은 양념, 호로록 혀끝과 앞니로 뼈를 발라내 씹었을 때의 쫄깃한 식감이 기가 막혔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먹은 사람은 없다던 그 맛이었다. 어느새 내 앞접시에는 잔뼈들이 가득 쌓였다.

얼마 전 삼천포 산행 후에 다시 총무님의 닭발이 화제에 올랐다. 바닷가 공원에서 몇몇 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맛의 환희가 다시금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파랑새님, 닭발 또 먹고 싶어요." 안 먹어 본 사람은 궁금해서, 먹어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어서 연호했다. "닭발! 닭발!" 총무님은 "내가 한 닭발 해요."라며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면서 기꺼이 수락했다.

닭발 모임 날, 총무님은 한껏 솜씨를 발휘해서 주요리 양념 닭발을 비롯하여 호박전, 미역국에 따뜻한 밥까지 준비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7명의 여자만 다시 모였다. 산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퇴근 후 집에서 만나니 정말 새로웠다. 늘 등산복 차림으로만 만나다가 옷도 헤어스타일도 대화의 주제도 달라지니 처음 만나는 것 같았다. 늘 조용히 웃기만 하던 동년배 민비는 의외로 수다쟁이였고, 늘 주변을 배려하는 막내 샹그릴라는 애교쟁이기도 했다. 분위기를 이끄는 이슬 언니는 술자리에서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산행의 선두를 놓치지 않는 울트라언니는 동생들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다정한 큰언니 같았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문득 우리 몇몇은 서로 이름도 직업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린 여러 해 동안 수없이 많은 산을 함께 오른 사람들이다. 높은 산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고 멋진 풍경에서는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었는데도 말이다. 산악회에서는 별명으로 서로를 호칭한다. 금지된 일도 아닌데 그 사람의 이름이나 직업을 굳이 묻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지만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돕는다. 산길을 잘 읽는 사람은 앞서서 이끌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와서 인생 사진을 찍어준다. 어떤 이는 가녀린 몸이지만 과일이며 커피며 간식을 무겁게 챙겨와 휴식 시간을 달콤하게 해준다. 음식 잘하는 언니는 맛깔스러운 반찬을 챙겨와 먹여주고, 자기는 마시지도 않으면서 꽁꽁 얼린 맥주를 가져와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도 있다. 발걸음이 빨라 앞서가다가도 험한 바위 앞에서는 꼭 기다렸다가 끌어올려 주는 사람도 있고 발을 내딛기 무서운 미끄러운 바위에서는 심지어 허벅지나 어깨를 내어주며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일에 이름과 직업도 지위의 높낮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며 산행 친구가 되었다.

서로를 안다는 것이 뭘까? 이름과 직책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쌓은 촘촘한 시간의 기억이라 말하고 싶다. 자꾸 바뀌는 호칭 한 번 기억 못 한 것이 뭐 그리 대수람! 자신을 위로하고 나니 파랑새님의 닭발이 또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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