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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설악산 여행을 다녀온 큰언니가 선물로 필통을 사 왔다. 나는 진파랑을, 바로 위 셋째 언니는 고동색을 골랐다. 표면은 빌로드 천으로 부드러웠고 안쪽엔 작은 거울까지 달린 세련된 디자인이라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필통으로 평생 남을 억울함이 생길 줄은 몰랐었다.

하루는 셋째 언니가 씩씩거리며 달려오더니

"너, 내 돈 훔쳐갔지?"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난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필통에 넣어둔 돈이 어디로 갔냐며 같은 방을 쓰는 나를 의심하고 내가 가져갔다고 우겼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았고 엄마에게 이른다며 홱 돌아서 가버렸다. 너무 억울했던 나는 혼자 방에서 엉엉 울었다. 어디서 잃어버리고 와서 나한테 누명을 씌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 더 속상했다.

언니가 던져둔 필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필통 안쪽에 붙어있는 거울 뒤에 삐죽이 나온 것이 있어서 얇은 자로 쏙 밀어보았더니 잘 접은 천 원짜리 지폐가 거기서 나왔다. 필통에 넣어둔 것이 거울 뒤로 들어갔는지 처음부터 거울 뒤에 숨겨두고 다람쥐처럼 잊어버린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필통에서 돈을 찾았다. 의기양양하게 언니에게 돈을 건네며 거울 뒤에서 찾았다고 했다. 언니의 경솔함을 탓하고 내 억울함이 풀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더 억울해졌다.

"나한테 들켜서 거울 뒤에서 찾았다고 한 거잖아."라며 우겼다. 적반하장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울고 또 울었다. 흔한 자매들의 일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너무나 억울해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내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 집의 절대권력자인 엄마도 개입하지 않으셨다.

더 황당한 것은, 세월이 지나고 지난 어느 날, 언니랑 얘기를 나누다 그 얘기를 했다. 고약한 언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상했었는지 말했다. 그런데 언니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억울해서 목이 쉬도록 울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한데 "그런 일이 있었나? 미안하데이~."라며 웃었다.

그 일 때문인지 살면서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 생각되는 일에는 그 일을 해결할 때까지 가슴이 벌렁거리고 극도의 불안감이 생긴다. 가족 안에서도 웬만한 일은 웃으며 넘길 수 있는데 억울한 일은 참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해외여행 예약금을 호텔의 횡포로 환불거절을 당했을 때도 끝까지 항의하고 증명해서 돌려받았다. 딸아이가 방을 구할 때 임대인의 귀책 사유에도 예약금을 반환하지 않았을 때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담담하되 단호하게 자료를 찾아 설명해서 전액 돌려받았다.

작은 나의 경험은 학교 일도, 교직원의 일에도 적어도 억울함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관리자로서 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고 약속했다. 학교 조직에서 합의된 결정이라면 한 사람만이 손해를 보게 해서도 억울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의 최종 결재권자로서 학생의 일도 교사의 일도 끝까지 책임을 지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내게 무슨 권한이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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