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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주말에 울산에서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친정에 잠깐 다니러 가도 친척들을 만날 여유는 없었다. 예식장 입구에서부터 여기저기 친척들과 인사하기 바빴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나를 엄청 반가워해 주셨다.

예식 시간이 다가와 어두컴컴한 홀에 들어서니 한가운데 테이블에 어르신들이 둥글게 앉아 하하 호호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사촌 언니와 올케언니들이었다. 못 본 사이 세월이 흘러 80세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쾌한 모습이었다. 그 안에 큰집 큰올케도 있었다. 검정 바바리코트 깃 안으로 명품 스카프를 단정하게 두르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직도 팽팽하고 하얀 피부, 반듯한 이목구비가 고운 그녀를 누가 할머니라고 할까? 78의 나이인데도 말이다.

나한테 큰올케는 특별한 존재다. 가끔 딸들이 나를 보고 감탄하는 몸짓을 하며 묻곤 한다. "와! 우리 엄마의 자존감 뿜뿜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나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자기애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는 울산 외곽 작은 마을이었고 김씨 집성촌이었다. 한 집 건너 모두 친척이었고, 길을 따라 아래부터 큰집, 우리 집, 셋째 큰집, 둘째 큰집이 줄지어 살았다. 담 넘어 고개만 내밀면 뭐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낮은 담이 있었고 우물도 같이 썼으며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모두 모여 한 집처럼 드나들었다.

시내에 사는 큰집 큰오빠는 두부 공장을 운영했고 제법 번창했었던 것 같았다. 기사가 운전하는 까만 자가용이 미끄러지듯 큰집 앞에 멈춰 서면 큰올케가 고운 원피스를 입고 함께 내렸다. 아주 어릴 때부터 논밭에서 일하고 계신 큰엄마에게 그녀를 안내하는 일은 바로 윗집에 사는 내 몫이었다. 그때마다 올케언니는 뒤따르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애기씨 눈 좀 봐. 똘망똘망 총기가 가득하네. 이렇게 똑똑하니 공부도 잘할 거야."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애기씨 예쁘죠? 커갈수록 더 인물이 날 거예요. 뭐든 한자리할 것 같지 않나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무뚝뚝한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말씨까지 상냥했다. 어린 나에게 관심 가져주고 작은 것을 찾아 칭찬해 주었으며 긍정적인 예언까지 해주었다. 그 말들은 언제나 내 마음에 그림처럼 머물렀다. 딸들이 말하는 나의 자존감 뿜뿜은 상당 부분 그녀의 말 덕분이라 믿는다.

피로연에서 큰올케 옆에 다가가자 조용하던 그녀가 수십 년 전 그때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우리 애기씨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지. 예전부터 내가 말했잖아. 어릴 때부터 얼마나 똑똑했었다구." 그녀는 내가 교장이라는 '한 자리'를 할 것을 미리 예견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했다.

그녀는 알까? 사실은 나를 볼 때마다 건네던 그녀의 칭찬이 목마른 나에게 생명수가 되었고 예뻐진다고 믿게 했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붙들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칭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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