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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 교장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학교를 기웃거리고 계셨다. 전쟁이 나던 1950년도에 2학년을 다닌 동문인데 학교가 궁금해서 들어오셨단다. 여긴 이런 건물이 있었어. 저긴 저런 건물이 있었어. 하시며 추억을 더듬으시다 교문 옆에서 노랗게 물든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그때도 저 나무가 제법 컸다고 하셨다. 올해 딱 100주년이 된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학교에 은행나무는 두 그루다. 하나는 아담한 크기로 해마다 잔디밭에 큼큼한 은행알을 떨구는 부인나무로 다정하게 서 있다. 아름드리 나무는 작은 동네 관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할 만큼 키가 크고 잘 생겼다. 학교 앞쪽은 주로 상록수인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연중 큰 변화가 없는데 이 두 나무가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계절을 펼쳐놓는다.

한여름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긴 그늘을 드리워 아이들의 쉼터가 되고 선생님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업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나무아래 보도블록에 그려놓은 달팽이 놀이터에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땐 긴 팔을 드리우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다.

늦가을엔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을 후두둑 떨어뜨려 노란색 호수 하나를 금방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벤치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으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100년의 학교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자꾸만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게 된 것은 순전히 2학년 종혁이가 수업시간에 쓴 글 때문이다. 2학년 담임 안선생님은 수업일기를 밴드에 쓰고 계시는데 학부모님들과 함께 교장인 나도 초대해 주었다. 1주일에 한두 번씩 수업사진과 동영상, 아이들의 수업결과물 등 다양하게 올려놓으신다. 하나하나 살펴볼 때마다 남자아이 둘과 꽁냥꽁냥 재미있게 만들어가는 수업에 빠져들게 된다. 달랑 2명인 학급을 마치 20명 인양 열심히 준비해서 가르친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처럼 안선생님의 수업은 역동감이 넘친다.

둘만 가르치기엔 너무나 아깝다 노래를 불렀더니 9월에 한 명이 전학을 왔다. 소영이가 합류하며 2학년 수업은 더 활기차고 재미있어졌다. 태풍이 두어 차례 지나간 가을 초입에 2학년들은 학교에 있는 식물을 관찰하고 사진일기를 썼다. 은행나무를 선택한 종혁이의 쓴 글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우리학교 은행나무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걸려 있다. 지난번에는 형들이 뻥 차올린 축구공이 걸려 있었다. 좀 더 있으면 은행나무가 트리가 되겠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종혁이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수업일기를 보면서 왜 안선생님이 종혁이를 '작은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지 이해됐다. 앞니 빠진 시인 종혁이가 연필을 꾹꾹 눌러 시를 쓰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내 입술에 힘이 가고 입꼬리도 올라간다.

어르신의 손끝을 따라 은행나무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비닐봉지가 매달려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비닐봉지가 사랑스럽다. 교장의 눈으로만 봤을 때 은행나무에 걸린 비닐은 쓰레기였다. 크레인이나 있어야 내릴 수 있는 높은 곳에 걸려 있어 해결할 수 없는 천덕꾸러기였다. 종혁이의 눈으로 종혁이의 마음결을 따라 바라보니 은행나무의 비닐봉지가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바뀌어 보였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은행나무는 70년 전 2학년이었던 어르신을 알아보고 700명이 북적거렸다던 그 옛날을 그리워할까? 종혁이의 은행나무는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2학년 종혁이의 은행나무 트리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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