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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6.13 16:07:00
  • 최종수정2016.06.13 16:07:00

장인산 신부

청주로 오기 전에 미국 선교사이신 파 주교님(제임스 파디)은 먼저 제천 남천동성당으로 어머니를 파견하셨다. 어머니는 와 요한 신부님과 한 요한 신부님 등 미국신부님들을 도와 전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한편으로는 당시 남천동 본당안에 있던 천애원에 살던 전쟁고아들 80여명의 아동들을 치료하는 일도 겸하게 돼 많은 피부병 환자들을 돌보게 됐다.

우리 두 아들들은 이때 남천동 성당에서 첫영성체도 하고 복사단 활동도 했고, 노기남 대주교님으로부터 견진성사도 받았다. 할머니 김영룡은 본래 이북 걍계에서부터 개신교 신자로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사셨고 권사직분까지 맡으셨었으나, 어머니로부터 감명을 받아 천주교로 개종해 제천 남천동 본당에서 모니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으셨다.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어머니는 제천에서 효부상을 받으셨다. 1958년 6월 24일에 김영룡 모니카 할머니께서 고 요한 신부님께로부터 종부성사를 받으신 후 선종하셔서 제천 고명리 천주교회 묘지에 묻히셨다. 그 후 어머니를 따라 우리는 그해 9월에 청주로 이사 와서 북문로 예수성심 성당으로 옮겨오게 됐다. 동생과 나는 청주 주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중학교에 입학해 공부했다.

어머니는 이 때 부터 북문로 성당에서 반 레문도 신부님, 유 프레데릭 신부님 등 여러분을 도와 본당 여자 전교회장직을 수행했고, 어머니는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를 충실하게 가르치기 위해 일본어로 된 교리해설서를 매번 번역해 가르치곤 하셨다. 1962년 맏아들인 장인산군이 서울 혜화동 소재 성신고등학교에 들어가 소신학생이 됐다. 어머니는 초대 유 프레데릭 신부님과 그 다음으로 길 야고보 신부님이 서운동 본당에서 사목하시는 동안 줄곧 본당 일을 도우시면서 여러 공소에 다니시며 교리도 가르치셨다. 당시 공소로는 효촌, 두산, 가덕, 병암, 문의 등이 있었다. 어머니는 걸어서 화당, 양촌, 용담동 등 여러 곳으로 전교하러 다니셨다. 둘째 아들 장인남군은 서운동에서 1965년도에 서울 소신학교에 입학했고 맏아들 장인산군은 같은 해 광주 대신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서운동 본당에 한국인 사제로 이한구 신부님이 부임해 오시면서 어머니는 19년 동안 일하시던 전교회장직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항상 성당 일에는 능동적으로 정성껏 참여하셨다. 그리고 집에서 산파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아기들의 생명이 탄생되는 일에 도움을 주셨다. 우리 교구 사제들과 신자들 가운데 어머니가 받아주신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약 3년동안 어머니는 전몰군경미망인회 충북지회장직을 맡으셔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원하셨던 수도생활 대신에 2대째에 사제아들들을 허락하셨다. 맏아들 장인산군은 197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돼 독일 본대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979년 6월에 사제품을 받았다. 둘째 아들 장인남은 1976년 12월에 서운동에서 사제품을 받고 충주 교현동 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맏아들이 있는 독일로 1977년에 건너와서 살게 되셨는데, 장인남 신부도 1979년 로마에 유학을 오게 되면서 가족이 모두 외국생활을 하게 됐다.

1986년 공부를 마친 장인산 신부가 귀국해 감곡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어머니도 감곡에 오셔서 함께 생활했다. 그 후 충주 교현동, 내수, 청주 신봉동에도 함께 하셨고, 2014년 1월 25일에 선종하실 때까지 우리 두 아들 사제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바치셨다. 어머니가 늘 앉으시는 자리 옆에는 묵주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큰 아들 신부를 위해서 드리는 묵주가 따로 있고, 작은 아들을 위해서 드리는 묵주가 따로 있어서 매일 꺼내서 각각 세 번씩 묵주기도를 드려주셨다. 편찮으신 관계로 성당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묵주기도를 더 열심히 바치셨고, 주무실 때에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쪽 눈이 실명되기 전까지 매일 성경을 읽으셨다. 주님께서는 어머니에게 복을 내리시어 94세까지 저희들 곁에 있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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