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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에 찰밥이 올라왔다. 여름 찰밥은 보약보다 낫다고 한다. 무더위를 비틀거리며 견디어 낸 나를 배려한 아내의 마음이다. 밤 대추 잣 같은 보가 될 만한 약재들을 넣어 지어낸 정성이 고맙다. 그런데 정작 입맛을 돋우는 것은 찰밥보다 노각무침, 노각냉국이다. 찰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고, 매콤하고 상큼한 노각무침 한 젓가락으로 입안을 자극한다. 아삭아삭하는 감각이 좋다. 다음에는 얼음이 동동 떠서 시원하고 새콤한 노각냉국으로 입가심을 하니 무정하게 떠났던 입맛이 되돌아오는 기분이다.

화덕 같은 더위로 잃어버린 미각을 귀할 것도 없는 노각으로 치유하면서 '쿡' 웃음이 나왔다. 어린 시절에는 퉁퉁하게 퍼져서 누렇게 변색된 노각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다. 덩굴에 매달린 채 장마철을 넘기면 푹 물러서 문드러져 떨어졌다. 텃밭에 찬거리로 몇 이랑 심어 가꾸는 오이는 애오이일 때 무침이든 냉국이든 환영을 받았다. 심심하고 배가 허전해서 몰래 밭에 들어가 오이를 훔쳐 먹을 때도 물론 노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연하고 고소한 애오이는 반찬으로 군것질로 노각이 될 겨를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오이 중에서 실한 놈을 일부러 늙혀 노각을 만드는데 정성을 들였다. 종자를 삼고자 하는 뜻이었을 텐데 씨앗을 발라낸 노각은 버리지 않고 반찬을 만들었다. 노각된장국을 끓이면 할머니께서는 아주 맛나게 드셨지만 나는 밍밍한 맛을 몰라 투덜거렸다. 어머니는 노각무침을 따로 만들어 나를 배려했지만 그것도 맛있는 줄 몰랐다. 이렇게 노각은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사십년 교직 생활 동안 여럿 만난 교장 중에 황교장이란 분이 계셨다. 말씀은 참 어눌했지만 학생들이나 교사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분이었다. 그런데 유별난 눌변에도 때로 깜짝 놀라게 하는 명언이 있었다. 삶의 진실을 담은 말씀은 웅변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마다 느꼈다. 사십대에 들어서도 승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내게 아픈 충고를 해주었는데, 젊은 날에 야망을 갖지 않으면 자칫 노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아픈 말씀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말씀을 따르려면 교사로서 본질인 가르치는 일 이외의 일에 열중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귀에 담지 않았다. 아니 까맣게 잊고 살았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황교장 말씀대로 내가 정말 노각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애초에 야망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마음에 걸어 두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내가 조직에서 점점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사실은 그게 노각이었던 것이다.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 더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마음을 쓰고,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고, 아이들이 내게 필요로 하는 것이나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한 걸음 더 걸으려고 노력했다. 생명에 영혼을 불어 넣듯 연구실 책상에 놓인 난에도 목마르다 하기 전에 물을 주었다.

'100억 수출 1000불 소득' 이 말은 1973년 4월 첫 발령을 받고 간 초등학교 건물에 걸어놓은 온 국민의 지상 과제였다. 그런데 이것을 달성한 게 언제인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벽지 학교 아이들은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보리밥이지만 실컷 먹어보는 게 소망이라고 했었다. 이제 40년 만에 만난 그 제자들은 나보다 더 좋은 차를 굴리고 다닌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해서 내가 호롱불을 켜고 개설한 야학에 나와 공부했던 처녀는 고입 검정을 거쳐 지금 독일에서 심장 수술의 명의가 되었다. 40년간 일만여 제자를 두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제자들을 만난다.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교단교사들이 느끼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때때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직생활 동안 집을 사고,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아 대학까지 가르쳐 성가시켰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0년간 문학을 가르쳤다.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심심찮게 청탁도 받는다. 내가 학교나 아이들에게 베푼 것보다 학교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학교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철이 났을 때, 열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힘겨워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옆으로 가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조직에서 내가 담당해주기를 바라는 일들이 부담되었다. 책상 위의 난이 잎줄기가 말라 돌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노각이 된 것이다.

식탁의 노각무침 노각냉국을 맛나게 먹게 된 것도 노각이 되어버린 내 입맛에 맞아서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나 노각은 요즘 건강식품이라고 한다. 맛만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칼슘과 섬유질이 많아 생활에 찌든 우리 몸을 정화시켜 준다고 한다.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고 노화를 막아준다고도 한다. 그런 것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덥고 답답할 때 입안을 상큼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은혜로운 일이다.

지난 8월 말 나는 40년 5개월을 교단 교사로서 막을 내렸다. 열정은 살아 있어도 무겁고 굼뜬 몸이라 발걸음을 아이들에게 옮기지 못할 바에야 젊고 싱싱한 예비 교사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마지막 시간까지 분필을 들고 문학을 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신의 은혜에 감사한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제 노각으로서의 남은 힘을 무슨 일에라도 쏟아내고 싶다. 노각도 건강식품이라는데 교직은 떠났지만, 사회 어느 곳에서라도 노각만큼 깊고 그윽한 맛으로 사회의 영혼에 건강한 영양이 되는 길을 새롭게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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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