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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뜨락 - 오색의 신비 비터멜론(bitter melon)

잎·줄기·열매·뿌리까지 버릴 것 없는 약재 '여주'

  • 웹출고시간2013.10.13 16:19:30
  • 최종수정2013.10.13 16:19:30
어린 시절 야트막한 우리 집 담을 타고 올라간 그 식물의 열매는 '유주'라고 불렀다. 그때는 토종식물로 담장 위에 예쁘고 독특한 황금색 과실 모양이 완숙된 후 벌어진 사이로 빨간 육질에 싸인 달콤한 씨를 무엇에 먹는 것인 줄도 모르고 먹었던 추억을 많은 사람 이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녀는, 내가 어려서 보았던 그것과는 아주 다르게 변형된 모양의 열매를 보이며 유주가 아닌 여주란다. 그 열매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주, 중국에서는 고과(苦瓜), 일본은 고야, 영어로는 비터멜론(bitter melon), 발산 애플(Balsam apple)이라고도 한단다. 여주 품종은 일본, 중국, 인도산을 함께 섞은 교배종으로 아담한 크기의 토종과는 달리 80cm까지 자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병으로 10여 년을 약에만 의존하며 치료 중인데 어느 날, B 여인은 여주가 자연 속의 살아있는 인슐린이라고 한다. 확실한지는 모르나 병원에서 처방하는 인슐린 주사약의 원료나 다름이 없으니 구할 수만 있으면 꾸준히 장복하면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하였다.

지난 5월, 여주 농장에서 10포기를 구하여 B 여인의 앞마당에 심어보라고 부탁 하였다. 그녀는 정성 들여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거름도 주며 바쁘게 기르는 동안 나도 함께 지난여름 내내 여주의 자라는 모습에 푹 빠졌다.

김정자 약력

청주 출생

『한국수필』등단

청주시문화공로상, 법무부 전국교정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청주예술공로상, 홍은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역임

수필집『세월 속에 묻어난 향기』,『어느 해 겨울』, 『41인 명작품 선집』

비터멜론

비터멜론은 원산지가 인도로 알고 있다. 식재한 싹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가는 덩굴줄기에 고사리 같은 덩굴손으로 지주대를 감으면서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기이한 것은, 손바닥 같은 잎과 줄기 사이에서 긴 꽃대가 나와서 손마디 하나쯤 올라간 곳에 하트 모양의 잎사귀가 만들어진 다음 노란 꽃이 피었다. 식물 잎사귀가 사랑의 심볼 마크를 준비하여 꽃을 피워, 벌 나비를 유혹한다는 생각을 하니 신비스럽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하트 모양은 역시 식물의 사랑 모양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도 이 나이에 알게 되었다.

6월부터 사랑스러운 노란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여주 꽃향기가 그녀의 집 온 마당 한가득하다며 나를 불렀다. 그녀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한참을 앉아있으려니 여주 꽃향내에 머리가 맑아지는 듯 개운하다. 은근하면서도 우아하고 달큼한 향내가 연방 코끝을 간질인다. 긴 한숨으로 폐부 깊숙이 들여 마셔 본다. 노란 꽃들의 향연은 연신 지면 열매를 달고, 또 다른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다는 그들만의 예술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렇게 그녀의 집 앞마당에는 여주 나무로 여름내 무성한 초록색 덩굴이 동굴을 이루었고 헤아릴 수 없는 열매를 맺는다. 마치 작은 여주농장처럼 실하게 잘도 자랐다. 진초록의 잎사귀, 줄기 사이에 노란 꽃이 진자리에 열리는 여주열매는 박과의 덩굴 식물로 여름 채소로 분류된다고 한다. 여주는 울퉁불퉁하게 생겨서 어쩌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기이하게 생겼다. 혹 같은 돌기가 총총 많이 달려 어찌 보면 사춘기 남자들의 여드름처럼 보인다는 시인도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유주와는 아주 다르게 길고 큰 열매는 길이가 40센티까지 자라 튼실하게 생겼다. B 여인은 익기 전의 초록색 열매가 가장 살아있는 인슐린이란다.

튼실한 초록색 여주는 며칠이 지나면서 황적색으로 익는다. 익은 뒤에는 껍질이 세 갈래도 터져 갈라지더니 빨간 육질로 둘러싸인 타원형 씨방이 드러나는데 그 종자 육질은 내가 어려서 맛보았던 바로 그 맛이다. 실한 종자를 한 움큼 간직하였다. 우리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도 잘 자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또 다른 L 여인은 베란다 화분에 심었는데 빨래 말리는 빨래걸이로 온통 감아 올라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해 여름 내내 여주와 대화를 나누며 아주 바쁘게 수확을 짭짤하게 하였다며 자랑하였다.

여주의 종자에 싸인 육질은 달큼하지만, 과육은 진한 쓴맛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고과(苦瓜)라고 한단다. 믹서에 곱게 갈아 요구르트나 우유를 섞어 하루에 한 컵씩을 마셨다. 일주일을 복용한 후 당치수가 현저히 내렸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 살아있는 인슐린이란 말이 실감 나는 현실에 놀라웠다. 인터넷 검사를 해보니 비터멜론을 먹으면 당이 근육에 잘 흡수되어 체내 에너지 연소 효율이 높아지며, 당뇨병 환자의 특유 무력증도 개선된다고 한다.

옛날부터 여주가 한약방에서는 잎, 줄기, 열매 뿌리까지 요긴하게 쓰이는 버릴 것 없는 약재료로 쓰인다고 문헌에도 적혀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초록색 열매를 B 여인은 연신 따다가 아파트 문고리에 걸어놓고는 문자로 알린다. 부지런히 갈아먹고 약의 효험을 느끼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9월이 접어들면서 수확이 부쩍 늘어 김치냉장고는 여주가 거의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도 길쭉하고 실한 초록색 여주를 도마 위에 옆으로 눕혀놓고 배를 가른다. 하얀 씨방이 마치 초승달처럼 생겼다. 한가운데 씨방은 박속같이 하얗다. 씨방이 타원형으로 자리 잡고 그 속에는 아직 영글지 않은 씨들이 한가득 자라고 있다. 여주 한 개에 20~30여 개의 씨가 오보록하게 들어있다.

비터멜론, 여주는 오색찬란한 신기한 열매이다. 노란 꽃을 피운 다음 초록의 실한 열매를 달아 더욱 성숙하면서 박 속 같은 하얀 씨방을 지어 종자를 생성하고 황금색으로 화려한 열매로 변신한 다음 제 몸이 갈라지면서 새빨간 옷을 입은 종자를 남긴다. 수많은 자연의 신비 중에 여주라는 특별한 식물은 오색찬란한 자연 속의 예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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