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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8.04 16:05:04
  • 최종수정2013.08.04 14:11:43

상선암

잠에서 막 깨어나는 산천은 고요하기만 하다. 암반 위를 도란거리며 흘러가는 물소리도 정겹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아니 그 정적에 압도되어 가만가만 걷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부지런한 농부는 일을 해도 한참 했을 시간이지만, 단양 팔경 중 백미를 자랑하는 상선암은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을 계획하면 끝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조급한 성격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여기 오는 일이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요. 큰 수익이 될 만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지난해부터 도락산을 한번 다녀와야지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그 기회가 왔다. 아침 여섯 시 쯤 출발해서 이곳까지 오면 아홉 시, 등산하는데 다섯 시간 정도 예상하면 오후 두시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새벽 두 시에 잠이 깨어서 오질 않는다.

전 같았으면 잠이 오지 않아도 날이 샐 때까지 별수 없이 기다렸을 것이지만, 지금은 친절한 네비양이 있으니 길 찾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었다. 아내는 내 성격을 잘 알기에 새벽에 출발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붙잡거나 늦추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밖에는.

집을 떠날 때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든다. 길조가 분명하다. 신선암봉에 걸려있는 운무, 이 얼마나 운치 있는 풍경이랴? 마음은 벌써 도락산 직전의 신선봉에 머문다.

도락산을 다녀온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등산로가 잘 정비되지도 않았었다. 무척 고생했던 것 같다. 어느 산악회를 따라왔었는데 그 팀을 따라가느라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도 새롭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기를 쓰고 따라 올라갔어도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일행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밖에는. 이제 그런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틀에 박힌 생활에서 자유인이 된 지 7년이나 되었다. 힘들여 오를 산도 없고 뒤처질까 봐 전력을 다해 달리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간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좋다. 그저 내 체력에 맞게 올라가면 된다. 언뜻 생각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초연해 보일 수 있겠으나 아니다. 지금도 남보다 앞서 가고 싶고 뛰어나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을 뿐이다.

도락산(道樂山)!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道)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樂)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경치 좋은 산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역시 범인(凡人)임이 틀림없다.

안개가 걷히고 우람한 노송들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머리 위의 해님도 그 밝은 얼굴을 드러내놓고 자랑한다. 가파른 철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전에 없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너무 가팔라 숨을 몰아쉬게 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스틱을 가지고 다니긴 했어도 신세를 지지 않았는데 이제 혼자 걷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혼자 하는 산행은 외롭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편하다. 힘들면 쉬고, 경치 좋은 곳 있으면 앉아서 바라보고, 그러다 보니 자연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

신선봉

얼마를 올랐을까. 드디어 도락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신선봉에 도착했다. 신선봉은 커다란 마당바위에 가깝다. 이곳에 서면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민왕이 이성계에게 쫓겨 평민으로 가장해 머물렀다는 궁터골이 눈 아래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도 신선봉 그 웅덩이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신기한 바위 연못! 사방 1m쯤 되는 연못은 푸른 하늘을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망이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온통 세상의 모든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탁하기만 하다. 가뭄 때 숫처녀가 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면 금방 소나기가 쏟아진다는 신기한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 그 전설을 믿고 어떤 처녀를 시켜 그 물을 모두 퍼내게 한 다음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그 처녀의 입장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웃음보가 터지려 한다.

그 탁한 물속에 신선들이 살고 있었다. 머리를 조심스레 내놓고 누가 문안 왔나 하고 살피는 것은 비단개구리였다. 그래 너 정도는 되어야 이 신선봉에 살 자격이 있지. 그런데 어떡하면 좋으냐? 신선들이 이 삼복(三伏)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이런 곳에 살아서, 가엾은 것 같으니 얼마나 더울까? 부러진 소나무 가지라도 있으면 그늘을 만들어 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었다. 얼려서 온 것이라서 아직도 차갑다. 물을 웅덩이에 쏟아 부었다. 신선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속세의 인간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듯 모두 물속으로 몸을 감춘다. 배은망덕한 신선들 같으니, 아, 또 이 소인배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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