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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10.02 12:14: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코리안 특급' 박찬호(37·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마침내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투수 최다승 신기록을 달성했다.

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플로리다 말린스와 원정 경기에 3-1로 앞서던 5회말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막는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됐다.

팀의 5대1 승리로 박찬호는 통산 124승(98패)을 기록, 노모 히데오(일본·123승)를 뛰어넘어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 선수가 됐다.

박찬호는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세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고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6회에도 삼진 1개 포함 세 타자를 범타로 처리한 박찬호는 7회 삼진 2개와 뜬공 1개로 마무리하며 통산 최다승의 밑거름을 놓았다. 타선도 도와줘 6회 2점을 추가하며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는 2000년 한 시즌 개인 최다인 18승을 올리며 선발투수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박찬호는 2002년 당시 거액인 5년간 6500만달러를 받고 자유계약선수(FA)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허리 통증 등이 겹치면서 활약이 미미, 2005년 다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다.

선발투수로 뛰던 박찬호는 2007년 마이너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불펜 투수로 제2의 인생을 열었고 다저스(2008년)와 필라델피아(2009년), 뉴욕 양키스(2010년), 피츠버그로 옮기면서 마무리투수 바로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박찬호는 2007년 인생 최대 고비를 맞았을 때 '123(승)'이라는 숫자만 바라보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아시아투수 최다승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위해 택한 양키스에서 올해 초반 고전했으나 피츠버그로 이적한 뒤 안정을 찾고 시즌 4승3패 평균자책점 4.66을 거두며 내년에도 불펜투수로 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선발투수로 113승을 거둔 박찬호는 구원투수로 11승을 올려 노모의 기록을 경신했다

기사제공:쿠키뉴스(http://ww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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