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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9.20 01:44: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양준혁, '만루찬스 나에게도 오라!'

무려 18년 동안 푸른 잔디밭을 누볐던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41. 삼성 라이온즈). 꾸준했던 18년 동안의 선수 생활처럼 양준혁은 마지막을 전력 질주로 장식했다.

양준혁은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Blue Blood in NO.10'이라는 이름 아래 은퇴식 및 은퇴경기를 치르고 꾸준함으로 수놓았던 18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1993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양준혁은 '살아있는 전설' '걸어다니는 기록제조기' 라는 별명을 양산해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말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수식어나 다름없었다. 양준혁은 데뷔 첫 해부터 2001년까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고, 통산 4차례(1993년, 1996년, 1998년, 2001년)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양준혁이 갖고 있는 대기록도 그 면면이 화려하다. 양준혁은 통산 최다 안타(2318개)를 비롯해 최다 홈런(351개), 최다 타점(1389개), 최다 득점(1299개), 최다 루타(3879개), 최다 사사구(1380개), 최다 경기 출장(2134경기) 등,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양준혁은 주로 '2인자'의 자리에 머물렀지만,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통산 기록에서 당당히 1인자로 올라섰다.

그의 마지막 경기에도 '꾸준함'과 '성실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10번 중에 7번은 죽는데(아웃당하는데)좋게는 안 죽어준다"는 그의 야구 철학처럼, 뜨거운 은퇴 경기를 치렀다.

양준혁의 마지막 경기는 그의 시타로 시작됐다. 아버지 양철식씨가 시구자로 나서 아들의 마지막 경기의 출발을 알렸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당초 예고한대로 양준혁을 선발 출전시켰다. 양준혁은 9이닝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며 긴 시간 동안 그라운드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경기에서 그의 기록은 4타수 무안타였다.

"양준혁 선배를 상대로 전력투구하겠다. 그것이 예의인 것 같다.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SK 선발 김광현은 첫 타석부터 '양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1루수 겸 3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양준혁은 1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첫 타석을 맞이했다. 양준혁은 가수 김창렬이 부르는 '나 이런 사람이야'에 맞춰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양준혁이 타석에 들어서자 큰 함성이 달구벌을 뒤덮었다.

양준혁은 김광현과 7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삼진으로 돌아섰다. 그는 풀카운트에서 김광현의 7구째에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양준혁은 4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5구까지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바깥쪽으로 흐르는 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7회 양준혁은 파울 두 개를 쳐 볼카운트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볼 하나를 골라냈지만 4구째에 헛스윙을 해 또 다시 삼진으로 돌아섰다.

양준혁은 9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타석이기도 했다.

그 마지막 타석에서 양준혁은 "1루까지 전력질주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원을 이뤘다. 2루수 방면 땅볼을 친 양준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1루를 향해 질주했다.

결과는 아웃이었지만, 소원대로 그의 마지막은 '전력질주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게 됐다.

수비에서는 1루수와 우익수, 좌익수를 오가며 뛰었다.

4회초까지 1루수로 나선 양준혁은 2회 박정권의 타구를 2루수가 잡아 송구하자 이를 안정적으로 잡았다. 하지만 타구가 애매한 위치에 떨어져 박정권은 결국 세이프됐다.

양준혁은 5회부터 우익수로 자리를 바꿨다. 양준혁은 6회 박재홍이 친 외야 플라이를 잘 잡아서 처리했다. 외야 수비가 오랜만인 탓에 어색해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양준혁은 마지막 경기에서 팀이 패배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경기에서 삼성은 SK에 3-0으로 패했다.

SK는 선발 김광현의 7⅔이닝 4피안타 무실점 호투와 8회초 터진 이호준의 투런포를 앞세워 삼성을 물리쳤다.

은퇴 경기가 끝난 직후, 그리고 본격적인 은퇴식이 시작되기 직전 하늘이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전설'과의 작별을 슬퍼하는 듯 경기가 진행될 때 한 방울도 내리지 않던 비가 은퇴식 내내 내렸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신기록 현수막 표출로 시작된 그의 은퇴식은 메시지 전달 퍼포먼스, 영구결번 선포 레이저쇼로 이어졌다.

대구구장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양준혁 한 사람에게만 조명이 비춰졌다. 관중들은 손에 불꽃을 들고, 떠나는 그를 향해 흔들었다.

자신의 등번호 '10번 양준혁'이 적힌 커다란 유니폼이 외야 가운데로 솟아오르자 양준혁은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의 곁에는 숫자 '10'이 파란 빛을 찬란하게 내뿜었다.

선수 생활을 담은 영상과 함께 송사가 시작되자 양준혁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좀처럼 눈물을 멈추지 못한 그는 고별사를 낭송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는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양준혁은 눈물을 머금고 낭송한 고별사에서 "바로 오늘까지 나를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며 "나는 야구를 참 좋아한다. 야구선수로서 행복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순간들도 내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다"고 전했다.

"많은 분들이 더 뛰어야 되지 않냐고, 더 뛰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나 역시 현역 선수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야구는 내 모든 것"이라고 말한 양준혁은 "그러나 팬 여러분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때 떠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결정했기에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고 낭송을 이어갔다.

고향 품에서 떠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양준혁은 "이제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이 아닌 인간 양준혁으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또 다른 출발을 하려 한다. 앞으로 어떤 인생 항로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여러분이 보내주신 뜨거운 사랑과 힘찬 응원의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고 뼛 속 깊이 간직하겠다"면서 감사한 마음을 내비쳤다.

"대한민국 야구 파이팅"이라는 말로 고별사를 마무리한 양준혁은 대구구장을 천천히 돌며 구장 곳곳에 손을 흔들었다.

그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으면서 양준혁은 선수로서의 모든 것을 끝맺었다.

기사제공:뉴시스(http://ww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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