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고유함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1872년 영국의 어느 마을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7세 무렵 폐결핵을 앓았다. 이로 인해 예술가로서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25세의 나이에 죽음에 이르는 아까운 삶을 살았다. 그는 영국의 삽화가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rdsley, 1872~1898)다. 그의 작품은 검은 선으로 기괴하고도 음산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도회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비어즐리는 프랑스 작가 로트렉과 일본 에도시대의 목판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강한 선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히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의 대중 미술 양식으로 80%가 산지인 일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미술의 재료는 나무였다. 평평한 나무를 깎아 평면적이고 선명한 선묘가 특징인 우키요에는 서구에 알려지며 자포니즘(Japonism)이 형성되는 역할을 했다. 비어즐리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빅토리아 말기로 산업화의 가속화고 기계화와 합리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유미주의 예술철학이 대두되어 가던 시기였다. 유미주의란 '예술에 대한 예술'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추구를 바탕으로 한 철학이다. 문학에서 먼저 일어난 양식으로 대표적인 작가로 엘런 포와 오스카 와일드가 있다. 철학자 칸트는 예술은 자율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미주의에 대해 정립하며 아름다움을 가장 숭고한 가치로 여겼다,

비어즐리의 작품 속에는 유미주의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흑백의 대비를 이용한 서슬 퍼런 기괴함, 무서움, 사악함이 공존한다. 자신의 자화상조차 그렇게 그렸다. 여성을 주로 표현했던 그의 작품 속 여성은 이상적인 여성상과는 사뭇 다르다.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너무나 날카롭고 숨을 옥죄는 공포감이 서려 있다. 앞서 언급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소설 '살로메'의 삽화에서 잘 나타난다. 비어즐리가 그린 살로메는 아름답지만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의 작품은 내면에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유미주의 예술을 지향하면서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토록 공포스러운 작품을 남겼음에도 예술로 승화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서움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었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굳건하게 쌓아온 실력이 기반 된 까닭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했다. 그로테스크란 서양의 장식적인 요소로서 식물이나 형상화된 패턴을 곡선을 활용하여 유기적으로 표현하는 양식을 의미한다. 또한, 기괴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비어즐리의 작품에서 이 두 가지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후 아르누보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장식적인 요소를 특성으로 들 수 있다. 검은 선으로 표현된 작품이 화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고도의 섬세함이 깃든 옷감, 배경 등을 아주 얇은 선으로 치밀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아르누보 양식에도 이러한 표현이 나타나는데 더욱 다채롭고 곡선적으로 변모했다. 건축과 공예 등 시각예술 전 분야에서 발현되었다. 비어즐리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질 수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예술 양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