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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몇 년 전,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참한 아가씨를 보면 아들과 연상해서 '며느릿감으로 짚어 본다'라고. 딸이 혼기가 차 오자 내 입장이 그랬다. 젊은 청년을 보면 마음속으로 딸과 연관시켜 사윗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살가운 사람을 만나면 미래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장서 사이를 꿈꾸어 보고, 외국 출장이 잦다는 사람을 소개받으면 '해외여행이라도 갈 수 있으려나'라고 김칫국부터 마셨다. 내가 권고한 두 번의 실패 끝에 "내 인생에 더 이상 참견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요동치는 젊음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있을 수 없었다. '이 젊은이는 딸에게 과분하고 저 청년은 모자라고' 올리고 내리고 혼자 수십 번을 공상 해 보았다.

그럴 즈음, 이름있는 강사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키가 크고 인상 좋고 말도 잘하는 모든 게 갖춰진 남자, 저런 훌륭한 아들을 둔 부모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명문가 출신일까. 좋은 대학을 나온 분들일까. 그런데 그가 강연 중에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며 술과 화투를 좋아해서 어머니와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뽀글이 파마머리를 하고 꽃무늬 일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하며, 여러 동기간 속에서 치고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그는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고해소, 가톨릭에서 신자들이 가림막 넘어있는 신부님께 무릎을 꿇고 자신이 지은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곳이다. 때로 저마다 품고 있던 말을 하거나 심란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속마음을 풀고 나면 몸의 때를 벗겨 낸 듯이 정신이 한결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숲속에서 말한 이발사처럼 타인이 모르는 마음속 이야기를 덜어내고, 비워지면 편안해지는 것은 현대인에게도 마찬가지일까. 문명이 복잡다단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인공지능 시대, 심리상담사가 온전한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고 힐링센터가 날로 번성하고 있다.

내가 속해있던 공인중개사협회 윗자리에 있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지금은 작고하고 안 계시지만, 희수를 넘긴 노인회원 한 분이 사전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는데, 한참을 망설이던 그분이 말문을 연 것은 의외로 개인 자신의 이야기였다. 조강지처에서 아들을 두었으나 고등학교에 다니다 사고를 당해 잃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지금의 아내를 얻어 살고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그분의 진솔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에 나는, "사생활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가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분이 그 말을 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을지 짐작해 보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우리는 유명 인사의 인문학적 지식이나 강연에 감화되지만, 강사의 솔직한 고백에도 감동한다. 혹여 자신의 불우했던 흑역사라도 숨김없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열리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에서 오는 쾌감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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