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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사랑이 식으면 밥상도 식는다. 사랑과 배고픔은 뇌의 같은 부분에서 작동한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인 사랑과 식욕은 서로 닮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에서 유이치는 묻는다. "왜 너랑 밥을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지?", 미카게는 이렇게 답한다. "식욕과 성욕이 동시에 충족되기 때문 아닐까?"

힘들거나 외로울 때 불쑥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찜, 봄 향기 가득한 냉잇국, 바닷냄새 품은 갓구운 고등어자반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영락없이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일 것이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차려주는 음식은 단지 음식만이 아니다. 거기엔 자식에 대한 기도, 염원, 소망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리고,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랑이라는 재료가 듬뿍 담겨있다. 그 기억이 그리워 세상의 모든 자녀는 평생 엄마의 음식을 잊지 못한다.

살아가면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먹은 음식으로 기억된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음식의 기억은 강렬하다. 즐거웠던 시간의 빛나는 결정이 음식으로 되살아나 미각과 후각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맛난 음식을 마주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은 사랑과 식욕의 본능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욕이 좋은 사람이나 미식가는 사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각자 살아가는 모습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보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 그가 삶을 대하는 욕망과 태도까지 가늠할 수 있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드라마에 이노가시라 고로라는 중년 남자가 나온다. 그가 혼밥을 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생소하고 기이하다. 고객과 만난 후 늘 허기를 느끼는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 매번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우동이나, 돈가스, 어묵탕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음식을 입에서 우물거리면서도 '맛있다'라고 연신 감탄한다.

어찌 보면 재미없는 드라마이지만 자꾸 보게 된다. 묘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오프닝 내레이션이 한마디로 표현한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깐 그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드라마는 음식이 아니라 이 중년 남자의 음식에 대한 태도에 방점이 있는 것 같다. 즉, 그가 음식을 먹을 때는 오로지 입안의 혀로써, 음식에 대한 감각만으로도 온전히 삶을 즐길 줄 아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한 밥만 먹다가 '진짜 배가 고파서' 주인공은 낙향한다. 그녀가 홀로 차린 밥 한 공기, 얼어붙은 배추로 끓인 된장국, 두 쪽의 배추전은 무엇을 먹느냐, 얼마나 잘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요리하는 일의 숭고함, 먹는 행위의 고귀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식욕이 없다는 것은 삶이 아픈 것이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같은 뇌에서 자극하는 사랑을 못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엄마가 만든 음식도 슬픔과 고통과 애절함이 담겨있었을 테지만 사랑만을 먹여 주었기에 그 음식이 그리운 것이다.

밥을 잘 못 먹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요리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앞치마를 두르고 세상의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게 될 것이다. 밥이 끓고 요리가 보글보글 익어갈 동안 사랑은 다시 달아오를 것이다. 이제 군침이 도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진짜 가족, 진짜 친구가 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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