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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시집을 냈단다. 40여년의 직장생활, 60여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서투르고 어색하고 설익은 시를 세상에 내 보낸다고 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내게 책을 보내준 선배를 생각하며 단숨에 시집을 읽어 내려갔다. 198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써내려간 80여 편의 시를 읽는 내내 혼자 웃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여 목이 메기도 했다.

"세상이 흔들린 날 우리는 갇혔어요. 엄마는 숨졌고 아빠는 다쳤어요. 오랫동안 먹지 못해 꿈만 같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와요. 햇빛에 빛나던 야자나무 오르며 아직은 푸른 하늘 더 보고 싶어요. (중략) 바람에 춤추던 바닷물에 누워서 아직은 파도 소리 더 듣고 싶어요" '아이티의 소년 中에서'

22만 명이 죽고 30만 명이 부상당한 2010년 아이티의 지진을 바라보며 그 아픈 마음을 시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선배의 맑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즐거운 수학여행 이별의 길인가요. 어쩌면 기울어 세우지 못하나요. 향기롭던 보랏빛 라일락 떠올려 바닷물 마시며 눈을 감았지요. 숨 막히는 세상의 끝이어도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어머니" '바다에서 보낸 편지 中에서'

세월호 참사 때도 선배는 그 막막함을 참지 못하고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연민과 아픔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난 다시금 깨달으며 선배와 더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2년 전에 선배가 암과 사투를 벌인 것을 시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선배는 죽음을 대하면서 더 많은 시가 다가왔다고 했다. 투병이전에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는 시를 썼다면 투병이후엔 자신과 삶의 유한성을 당당히 바라보는 의연하고 담대한 시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 크게 놀라지 않았지. 폐암2기라면 기분 좋으이. 단층촬영 컴퓨터 화면에선 암세포가 팔딱팔딱 뛰네. (중략) 40여년의 직장생활과 60여년의 인생. 어렵지 않게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그깟 침샘암도 2기라면 괜찮은데, 다행히 침샘 종양은 아니라네" '어찌 살라고 中에서'

폐암2기도 벅찬데 2기 침샘암이 또 있다고 하니 아내는 찔끔찔끔 눈물을 뺐다. 병원 셔틀버스를 놓쳐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자고 했더니 중년의 택시기사는 기본요금만 받아서 어찌 살라고 그러냐며 차갑게 짜증을 냈다.

그 중년기사가 던진 '어찌 살라고' 한 마디에 오히려 선배는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난 그럭저럭 살아왔다고, 저렇게 돈 몇 푼 때문에 차갑게 투덜거리는 사람에 비하면 난 그나마 괜찮게 산 사람이라는 선배의 익살에 난 혼자 미소 짓고 몰래 눈물을 찔끔거렸다.

"개구쟁이 친구와 싸우다 코피가 나면, 이다음에 싸우자고 얘기하며, 싸움이 끝나서 좋다"는 '코피가 나면 좋다'는 시를 다시 읽는다.

선배는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코피가 나면 좋다'는 사람에게 그 무엇이 두렵고 그 무엇이 아프고 그 어떤 실존의 고단함이 있을 것인가.

시로써 타인을 염려하고 시로써 삶의 위엄을 지켜온 선배에게 그리움을 담아 인사드린다. 이제 은퇴하더라도 삶의 굽이굽이 세목들을 더 설레며 더 아름다운 시들로 채워 가시길.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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