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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함박눈이 내리던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하나의 겨울에만 머물 수는 없다. 언제든 다른 계절로 떠나야만 한다.

계절과 계절을 통과한 시간들은 수많은 계절의 순환에 따라 거쳐 온 내 기억과 망각의 다른 이야기들이다.

한 계절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한 사람과 결별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한 순간의 완벽한 겨울이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봄날, 되돌아갈 수 없는 여름, 한숨처럼 사라져버린 가을이 있다. 그 계절을 관통할 때마다 그 계절의 두께만큼 내 이야기는 쌓여간다.

몇 개의 계절은 축제처럼 들떴으나 몇몇의 계절은 기억조차 흐릿했다. 너무 황홀하거나 너무 진부했던 순간, 너무 뜨겁거나 너무 아팠던 시간, 그 모든 것이 이야기로 남았다.

모든 계절마다 설레며 매혹적인 이야기를 갈망했다. 그 계절마다 하나의 장소에 머물다 또 다른 계절로 떠나야만 했다. 어떤 계절은 기다림보다 더 빨리 당도했고, 다른 계절로 가기위해서 더 많은 눈을 요구하거나, 다시 많은 비가 필요한 계절도 있었다.

그 계절 속에 당신이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행지에서의 아침, 오래 꿈꾸어왔던 그곳의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창가에서 바라본 거리의 풍경은 낯설다.

그곳에서는 둘만이 아는 언어로 대화한다.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교감하고. 말이 없어도 꽉 찬 시간들, 같은 공간과 순간에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과장된 낭만이 넘친다.

그렇게 시작하여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고, 같이 밥을 먹는 날들을 맞는다. 함께할 미래의 시간들, 미래의 음식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에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은 계절을 몇 번이나 보낸다. 아직은 둘만의 방언만으로도 충만한 시기일 테니까.

어느 순간 쉼보르스카의 무력한 문장이 눈에 확 다가올 때가 있다. "문장을 잇다말고 우리는 자꾸만 침묵에 빠진다." 그때부터 한 계절의 경이로움이 사라졌음을, 서로의 말들이 어긋나고 있음을, 둘만의 방언이라 믿었던 언어는 단지 텅 빈 언어일 뿐이라는 자책이 생긴다.

이제 침묵과 독백의 계절로 접어들었음을 깨닫는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끊임없이 유보된 채 둘만의 이야기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한다. 이야기가 없는 세상, 헐벗은 계절에 나도 모르게 도착해 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계절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언제나 허기진다. 이야기가 그리워 벽에다 머리를 찧어도 통증조차 허기져 있다. 축제의 밤이 스쳐간 거리처럼 황량하다. 권태와 혐오의 아침이 이어진다. 삶은 시시한 농담과 같다는 혼자만의 중얼거림만 되풀이된다. 이제 너무 늙어버렸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하나의 계절, 몇 번의 계절을 함께 거닐던 사람 중에 몇몇은 아직도 실존감이 우뚝했다. 아무런 관념을 경유하지 않은 당신의 언어는 경쾌했다. 발걸음은 발랄한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 같았다. 계절의 리듬을 노래로 부를 줄 알았고, 모든 계절을 자기만의 색깔로 채색했다.

당신은 '천일야화'의 '세에라자드'처럼 마법 같은 이야기를 만들 줄 알았다. 눈물과 절망까지도 삶의 흔적이므로 그것조차 소중히 여겼다.

나를 매혹케 한 것은 당신이 만드는 풍부한 이야기였다. 잔혹한 술탄으로부터 세에라자드의 죽음까지 유예시킨 그 끝없는 이야기의 힘을 당신은 가졌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횡단하고 있다. 그 속에 당신이 있고 내가 있다. 당신의 이야기가 내게 스미고,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포개질 때만 우리는 살아있다.

이 계절을 채울 당신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내게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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