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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1년에 한 번만이라도 가족여행을 하려고 했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지켜온 나만의 규칙이었다. 가족여행을 못한 해는 한 해의 수확을 제대로 못한 것처럼 왠지 허전했다.

바다에, 계곡에, 산에 도착한 후 우리는 서로 더 많이 의지하고 보살폈다. 낯선 곳에서는 우리 가족만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그 낯익음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더 잘 깨달았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던 낯익음과 편안함이 집을 멀리 떠난 후에야 더욱 또렷해졌다.

1994년 지독한 폭염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강원도 영월계곡에서 함께한 20일간의 야영생활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난 그때 알았다. 일상생활도 여행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삶이라는 것이 결국 여행이라는 사실을.

야영장에서 근무지로 먼 거리를 출퇴근하면서도 난 즐거웠다. 퇴근 후에 저녁거리를 사는 일도 재미있었고, 야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애들과 함께 계곡물로 뛰어드는 일도 신났다. 날마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던 별을 바라보며 애들이 부르는 동요를 따라할 때면 내가 꼭 어릴 적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것만 같았다.

큰 아들이 대입 수험생이 되면서 그 해는 반쪽짜리 가족여행으로 만족해야했다. 작은 아들과 문경 도장산 기슭에서 일주일간 단 둘이 보내면서 둘이 참 많이도 재잘거렸다. 아들놈은 잠시도 쉬질 않고 말을 이어갔고 난 그것에 화답하느라 또 얘기를 했다. 계곡물에 몸을 담글 때나 산 중턱 심원사 가는 길에도 우리의 대화는 그치질 않았다.

그렇게 이어오던 가족여행이 올해는 계획 단계부터 삐걱거렸다. 휴가일정을 잡기가 영 어려웠다. 아들 둘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새 가족이 생기면서 서로의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위성을 거느린 힘 있는 행성이 아니었다. 내 자기장은 그 힘을 잃었다. 오래 전부터 자전을 시작한 아들들을 억지로 내 행성에 공전시키려 했을 뿐이다. 이제 애들은 각자가 행성이 되어 자신만의 자기장으로 또 다른 위성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 속의 별들도 탄생과 성장, 소멸을 겪듯이, 인간도 우주 먼지에서 생겨난 존재이기에 우리도 별수 없이 우주처럼 변한다는 것을 진작 깨달아야 했다.

별의 연료가 소모되면 중력에 대항할 힘을 잃어 별이 수축하고 사그라지는 운명을 맞듯이, 나의 행성으로서의 위엄도 이제 작아졌다. 시간이 흐르면 몸도 늙고 가족관계도 노화를 겪는다.

한 때는 내가 가족의 주역이었으나 30여년이 흐르니 이제 애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은퇴를 준비하고 애들은 나날이 성장하고 더 뜨겁게 자전하는 중이었다.

휴가 일정을 서로 맞추지는 못했지만 내가 머무는 콘도로 두 아들네가 시간을 내어 찾아왔다. 물놀이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밤새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하루 만에 애들은 돌아갔다.

하룻밤이라도 나는 좋았다. 각자의 중력으로 자전하는 별들이 함께 포개지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냥 각자 흩어졌을 시간들이 함께 합쳐짐으로써 잠시나마 눈부신 빛을 발했다.

내가 거쳐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 특히 가족과 함께할 때였다. 내가 누군지를 증명하는 것도 내가 아니고 가족이었다. 나를 확장시킨 것도 가족이었다. 나라는 행성도 결국엔 가족들의 에너지로 연소시켜 가동해온 것이다.

우린 우연히 한 공간과 시간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주친 각각의 행성들이다. 나는 이제 좌표만 유지한 채 새롭게 탄생한 행성들을 위해 궤도 수정을 할 때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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