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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시간은 존재 이유가 없다. 시간 이전에 블랙홀이 있었다. 이 한 마디에 내 오랜 호기심이 풀리듯 후련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간이라는 막연한 개념이 몹시도 궁금했다. 빅뱅에 의해 시간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난 물리학의 지식에 자꾸만 목말랐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위대한 설계'를 읽고 아인슈타인의 책들을 찾았고 칼 세이건이나 빌 브라이슨, 짐홀트, 카를로 로벨리, 유발 하라리, 데이비드 크리스천으로 내 독서는 이어졌다.

경이로웠고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물리학에 대한 공부가 '우리는 누구인가,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궁극의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동안 내가 갈구하고 고민하던 철학과 종교와 신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물리학 앞에서 그 지식이 내게는 초라하고 빈약했다.

물리학의 세계를 탐험해 가는 동안 아름답고 놀라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 나타났다. 내 시야는 높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의 이 엉뚱한 지식욕의 촉발은 손주놈의 탄생 때문이었다. 3㎏ 남짓의 자그마하고 연약한 생명을, 하지만 심장이 팔딱이는 완전한 생명체인 손주놈을 두 팔로 안는 순간 난 내 오랜 궁금증의 해답을 일별하는 것만 같았다.

지난 38억 년 전에 생명체가 이 지구에 출현한 이래 손주를 내 품에 안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자와 입자들의 결합과 분해가 있었을 것이며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태어났다가 소멸했을 지를 생각하면 이내 머릿속이 아득해져갔다.

내 손주가 내 집에서 태어나기까지 수백, 수천의 조상들이 이 푸른 행성에서 햇빛을 쐬고 비를 맞고 바람에 부딪치며 번개와 같은 생명을 잉태했을 것이다.

또 그 만큼의 아버지와 엄마가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 했으며, 우주와 같이 길고 깊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밤들을 마음 졸이고 상심하며 외로워했으리라.

지구라는 이 창백하고 푸른 점 위에서 매일 매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호모사피엔스들의 기쁨과 슬픔들을 난 이제 우주적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지배와 복종, 전쟁과 기아, 욕망과 도덕, 경제와 정치, 수많은 종교와 이데올로기들, 그 모든 문명이라 불리는 자연선택의 결과물들이 결국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존재할 뿐'인 엄연한 물리현상 앞에서 난 오히려 담담하고 편안해졌다.

150억 년 전 빅뱅으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고, 38억 년 전 이 지구상에 첫 생명체가 탄생했다. 그 아득한 서사적인 여정을 거쳐 나의 손주가 젖 냄새 폴폴 풍기며 지금 내 품에 안겨있다.

연둣빛 나무들, 대지에 구르는 돌들, 바다 속의 돌고래며 상어들, 아프리카의 코끼리며 풀숲의 하루살이까지 그 모든 것이 빅뱅의 폭발에서 비롯된 별 가루로 만들어졌듯이 우리도 그렇게 별로써 태어났다.

난 오늘도 배고프면 소리소리 지르며 울며 보채는 손주, 까마득한 별이 내지르는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웃음 짓는 별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비단보다 더 부드러운 별의 살갗을 매만지며 앙증맞은 별의 손을 잡는다.

하나의 생명이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감탄했다. 은하의 별들이 아름답듯이 이 지구의 생명은 더 아름답다. 이 지상에서 빛나는 작은 우주, '별에서 온 그대'가 내 눈을 맞추며 반짝인다. 또 다른 시공간이 열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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