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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6.06 14:06:34
  • 최종수정2017.06.06 14:06:34

장정환

에세이스트

어제는 둘, 오늘은 하나, 아침마다 고라니의 묵직한 침묵을 보는 일은 착잡하다.

중력보다 더 무거운 생명의 정적이 놓여있다. 아스팔트와 납작하게 일체화된 생명의 침묵은 내 오늘의 시작을 둔중하게 누른다.

새벽 일찍, 혹은 어제 해질녘에 일상의 걸음을 내디뎠을 고라니는 이제 더는 움직이지 못한다. "한사람의 죽음은 한 세계의 소멸이다"라는 들뢰즈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사람 아니 한 마리 고라니의 세계는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이른 새벽 출근길에 반쯤 열어놓은 차창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기분 좋게 들이키지 못하고 나는 창을 올리고 만다.

언제이던가. 시속 100km로 가속페달을 밟을 즈음에 나는 갑자기 차를 급제동하고 길가로 얼핏 고개를 돌렸다. 스핑크스 형상의 고라니, 그랬다. 영락없는 스핑크스의 몸짓으로 두 눈을 끔뻑이며 두리번거리던 그 놈, 허리아래는 아스팔트에 눌러 붙었고 상반신만 곧추서있던 고라니의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두 눈만이 초롱초롱한 고라니는 자신을 소멸시키고 마구 내달리는 문명의 괴물들을 향해 그때 뭐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이제 죽어 가는구나. 아직 내 짝도 찾지 못하고, 친구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했고, 달콤한 과일과 나뭇잎도 맘껏 먹지 못했고, 저 넓은 세상도 다 달려보질 못했는데 이렇게 가다니, 고라니 생이 무상하다"라고 했을까·

아니면 "너희 인간이란 종이 유일하게 문명과 문화를 이룬 털 없는 원숭이라고 뻐기고 있겠지만 너희들도 나처럼 어느 날 느닷없이, 어이없이, 대책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소멸되어 질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고라니의 실존은 보지만 그의 본질은 알지 못한다. '스핑크스 고라니'는 우리 인간도 한 때는 길들지 않은 동물이었음을 내게 일깨웠다.

인간의 세속행위들, 먹고 자고 싸고 짝짓고 새끼를 기르고 싸우는 일이 동물의 본성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본능만 숭고하다고 말하지 못할 거였다.

지구상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중에서 호모사피엔스라고 불리는 별종만이 털이 없다고 해서 자만할 일인지, 게다가 인간이란 종이 제대로 진화해 왔는지도 의아스럽다.

직립할 수 있고, 연장을 만들 줄 알며, 3차원의 시야를 가졌고, 팔다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으며 좀 더 발달된 두뇌로 상상이 가능한 영장류이기에 우린 짐승이 아니라고 강변할 자신도 없다.

다만 호기심과 탐구력과 번식력이 왕성한 것은 인정하겠다.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것도 인정해야겠고 나한테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치고, 더 많이 가지려 싸우고 끼리끼리 텃세를 부릴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고작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이렇듯 휘저어 놓았다. 아마도 고라니와 나 사이에 동물끼리의 교감이 통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때쯤은 퇴근길이었다.

귀갓길의 도로는 이미 말끔히 치워졌다. 호적이 말소되어지듯 '스핑크스 고라니'의 흔적도 도로관리 공무원의 손에 의해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날 밤 난 신산한 한 존재의 소멸에 대해 생각했고, 인간을 우연의 실존과 쓸모없는 열정으로 정의한 샤르트르를 실로 오랜만에 호출했다.

"인간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에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해가는 존재이다." 자신이 입법자가 되어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받는다는 말씀.

그 고상한 말씀은 내 마음을 파고들지 못한 채 공허하게 떠돌았고 밤새 '스핑크스 고라니'의 맑은 눈망울만 눈앞에서 가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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