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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05 16:00:02
  • 최종수정2023.02.05 16:14:17

장정환

에세이스트

집을 지어보니 알겠다. 귀가라는 말의 소중함, 귀가 후에 느끼는 안도감을, 귀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집이 없다는 것이며, 돌아가지 못할 집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 자그마한 농가 하나를 지으면서도 난 많은 이들을 만났고 우여곡절의 사연을 들었다.

철근을 시공하는 용접공은 일하는 틈틈이 나에게 살아온 지난날을 들려주었다. 일하는 품새나 말투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때는 누구나 알만한 서울의 유명 출판사의 대표였으나 IMF 사태 때 사업을 접었다.

젊은 한 시절, 가장으로서의 책무 하나로 평범을 가장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날들, 어깨를 짓누르던 생애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 그 막막하던 시절을 견디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롭게 용접일을 배워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운 그는 넓은 땅에다 멋진 야영장을 만드는 게 다음 계획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지은 캠프장에 꼭 놀러 오라고, 나도 꼭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한 달 뒤 그 용접공은 내 시골집에 신년 대형 화보 달력을 보내왔다.

서울대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후 막노동판에 뛰어든 목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일솜씨가 날렵하고 섬세했다. 방수작업을 하던 미장공은 자기 손으로 마음에 드는 전원주택을 짓고 실컷 살다가, 또 다른 풍광 좋은 곳으로 가서 새집을 짓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교에 공부하러 와서 건축 노동판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청년 둘은 끼니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안타깝게 했다. 제대로 먹이기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바꿔봐도 매번 힘들어했다. 일의 고단함보다 밥 먹는 일이 더 곤욕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둘은 그렇게 대학원 학비를 벌고, 고향에도 생활비를 보낸다고 했다.

조그마한 집 하나 짓는 데도 이렇게나 많은 공정과 사람이 필요한지 놀랄 정도였다. 전기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가까운 지인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은 일이며, 배관, 도배며 장판 시공이며, 가구나 신발장, 수도꼭지 하나까지,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만 잘못되어도 집의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이 톱니처럼 정교하게 맞아야 집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모든 공정이 긴요하고 모든 사람의손길이 필요한 것이 집짓기였다.

난 요즈음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 집을 직접 지어보라고 권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건축 기술을 익히고, 내가 살 집을 설계하고, 가구 배치며, 정원 조성이며 가족들의 동선까지 생각하는 일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구상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집이 비쌀 필요는 없으며, 넓고 크지 않아도 되리라. 집은 내가 편안하고 따뜻하기만 하면 집으로서의 소임은 다하는 것이다.

아직도 내 집은 완공되지 못했다. 텃밭에 흙을 채우고, 작은 꽃밭을 만들고, 울타리에 페인트칠하고, 손자들을 위한 놀이터를 꾸미는 일은 시작도 못 했다. 하지만 난 이제 안다. 앞으로도 집은 결코 완성하지 못할 것임을, 인생이 그러하듯 집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며, 계속 채우고 비우고 가꾸고 돌봐야 할 대상인 것이다. 집짓기가 인생살이와 닮았다.

온전하고 행복한 귀가를 위해 따뜻한 내 집이 필요할 테지만, 그 귀가할 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세월의 풍화로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집이더라도, 그 집에서 함께 부대끼다가 내가 없는 먼 장래에 내 자손들이 나를, 내 삶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남는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게다가 집을 짓는 동안 우리는 설레는 꿈을 계속 꿀 수 있지 않은가. 끝끝내 집은 미완성으로 남아도, 내 손길이 쌓은 필생의 흔적은 그렇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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