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동두천 9.2℃
  • 맑음강릉 13.0℃
  • 구름조금서울 10.9℃
  • 맑음충주 8.1℃
  • 구름많음서산 14.8℃
  • 맑음청주 11.3℃
  • 맑음대전 11.8℃
  • 맑음추풍령 9.5℃
  • 맑음대구 11.1℃
  • 흐림울산 11.3℃
  • 구름조금광주 15.8℃
  • 흐림부산 14.6℃
  • 구름조금고창 15.4℃
  • 맑음홍성(예) 9.9℃
  • 흐림제주 17.4℃
  • 구름많음고산 17.5℃
  • 구름조금강화 9.8℃
  • 맑음제천 9.8℃
  • 맑음보은 11.4℃
  • 구름조금천안 11.1℃
  • 맑음보령 16.8℃
  • 구름조금부여 12.3℃
  • 맑음금산 10.7℃
  • 구름많음강진군 15.9℃
  • 구름많음경주시 10.5℃
  • 구름많음거제 13.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정환

에세이스트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총을 들이댄 것도 아닌데 다소곳이 몸을 맡겼다. 바닐라향의 샴푸내음이 나를 아찔하게 하였다. 매력적인 차도녀였다. 약간의 컬로 세련미를 더한 머릿결이 부드럽게 어깨를 감쌌다. 난 머리칼을 움켜쥐고 귓구멍을 향해 체온계를 밀어 넣었다. "36.7도, 약간 뜨겁지만 정상입니다"

타인의 육체온도를 재는 일이 회사원의 일상 업무가 되면서 모든 출입자의 체온을 측정하는 당번이 정해졌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여성 고객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귓불이 발그레 변했다. 아! 귓밥이 풍성하게 묻어난 체온계의 주둥이를 화장지로 닦으며 난 결심했다. '나도 빨리 귀지를 파야겠다'. 그렇게 이상한 일상이 시작됐다.

"할배, 멧돼지 잡으러 산에 가자" 주말에 온 손자의 말에 우린 국사봉으로 향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잎, 철 이른 낙엽의 풍화내음, 상큼한 공기, 난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몸짓과 자연호흡이 그리웠다. 그때 나를 번쩍 정신 나게 하는 한마디가 벼락처럼 들려왔다. "할배, 마스크 써야지" 진지한 표정의 다섯 살 손자 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보았다. '에고, 불쌍한 것' 난 그 놈을 꼬옥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손자의 바람대로 멧돼지를 잡지는 못했지만 난 멧돼지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사무실에 한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20명이나 되는 직원이 국가로부터 자가 격리 조치를 받았다. 강제로 집안에 감금된 지 이틀 만에 주민센터에서 보내온 구호물품을 하나씩 축내며 가까스로 생존해 갔다. 고기조각이 세 쪽이나(?) 되는 인스턴트 곰탕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난 다시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자가 격리 당한다면 난 자살하고 말테다'

자가 격리 중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보건소에 신고를 하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홀가분한 탈옥, 아니 탈주, 아니 해방이었다. 2㎞쯤 지났을 때였다. 자가 격리 모니터용 앱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정된 거주지를 이탈하였습니다. 방역수칙을 위반한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오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난 꼼짝없이 덫에 갇혀버린 감시사회의 수인이었다.

벌써 2년이나 흘렀다. 인간은 영특한 동물이라서 스스로 적응해갔다. 남에게 대책 없이 귓구멍을 맡기는 행위에서 이마로, 손목으로 체온의 측정부위를 바꾸어갔고, 급기야 얼굴만 들이밀면 온도를 알려주는 기계로 진화했다. 방독면을 쓰듯 숨 막혀 하던 마스크도 산소 호흡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루게 됐다. 아! 자가 격리, 그것만큼은 형이상학적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것은 부주의한 자로 매도되고, 부조리하고 절대고독인 실존상황에 내몰리는 일이다.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내가 코로나균이며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으로 철학적인 고뇌에 빠지게 한다.

공포, 지겨움, 단절, 불신, 절망으로 이어지는 디스토피아 시대에서 오히려 세상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에서 '우리'로 전환되는 공감의식이나 연대책임, '거리두기'가 아닌 '가까이 하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합법적으로 '거리두기'를 지켜야했던 세상의 며느리들은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애석해 할지도 모른다. 난 벌써부터 국가의 비호를 벗어날 며느리들이 딱하다. 게다가 우린 눈곱만 떼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헤헤거리며 천지사방 쏘다니던 위장의 시기를 아쉬워할지도 또 모를 일이다. 세상은 이상한 일 투성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