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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선열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⑨ 5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김순애 선생

  • 웹출고시간2019.05.02 13:24:41
  • 최종수정2019.06.04 19:14:53

김규식, 김순애 선생 결혼기념사진.

ⓒ 충북북부보훈지청
[충북일보=충주] 충북북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규식(1881.1.29~1950.12.10)·김순애(1889.5.12~1976.5.17) 선생 부부를 홍보하고 나섰다.

김규식 선생은 1881년 1월 아버지 김지성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97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아노크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뒤 1904년 귀국했다.

1906년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여러 강연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3년 11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 신규식과 함께 박달학원을 설립하고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됐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한국독립에 관한 청원서와 한국독립 항고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했다.

1921년 임시정부 내에 독립운동 노선으로 갈등이 야기되자, 잠시 임시정부를 떠났다가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과 외무위원을 맡았다.

1933년 1월 미국을 방문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운동을 전개하고 수천달러를 모금해 돌아왔으며, 1935년 7월 조선민족혁명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사천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1942년 10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보선됐고, 1944년 부주석에 취임했다.

선생은 1950년 북한군에 납치돼 그 해 12월 10일 평안북도 만포진 부근 별오동에서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김순애 선생은 1889년 5월 황해도 장연군에서 출생했다. 1909년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19년 김규식과 결혼했다.

선생은 1919년 7월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가 자금난으로 곤경을 겪게 되자, 1926년 7월 임시정부경제후원회에 참여해 임시정부의 재정을 지원했다.

또 간호원양성소를 설립, 다수의 간호원을 양성 배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독립전쟁에 대비하기도 했다.

선생은 1945년 11월 환국했으며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활약하면서 여성교육에 공헌했다. 선생은 1976년 5월 17일 8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정부는 두 분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규식 선생에게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김순애 선생에게 1977년 독립장을 추서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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