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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기억하자'항일의 魂' 지향하라'동방의 빛'

임진왜란·경술국치 일제 만행 맞서 온 몸으로 저항
도내 곳곳에 남은 흔적… 베이고 잘린 '전율의 역사'
남북 평화~강호대륙 깃발 들고 '1억 한민족' 우뚝

  • 웹출고시간2019.02.20 20:34:02
  • 최종수정2019.02.21 09:29:43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대한, 태극기'를 오는 3월 1일부터 6월 8일까지 100일간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서 선보이는 태극기는 재미교포 이병근씨의 소장 유물로, 50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충북일보] 3·1 만세운동 100주년.

동학 농민운동의 지도자 충북 출신의 손병희 선생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3·1 운동 당시 충청권 곳곳에서 봉기의 횃불이 활활 타올랐다.

1910년 경술국치. 충절의 고장 충청도 곳곳에서도 의병들은 불처럼 일어났다.

우리 역사상 일제가 1년 이상 우리 강토로 유린한 전쟁은 딱 두 번이다. 바로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은 무려 400여 차례에 달했다. 그때마다 최영·이성계 장군의 번뜩이는 칼날은 왜구의 심장을 도려냈다.

조선 건국(1392년) 후 200년 뒤인 1592년 4월 14일 오후 5시 총 30만 명의 왜적 선발대가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불과 12일 뒤인 1592년 4월 26일 신립 장군은 충주의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28일 새벽 왜군은 부대를 나눠 본진은 충주성에 돌입하고, 좌군(左軍)은 달천(達川) 강변으로 숨어 내려왔으며, 우군(右軍)은 산으로 숨어 동쪽으로 나가 강을 건넜다.

신립은 탄금대에서 수 십 명의 적병을 사살한 뒤,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마지막 보루였던 신립의 패배는 선조의 굴욕적인 평안도 파천(播遷)으로 이어졌다.

그해 6월 충북 옥천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조헌은 1천6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의병단을 구성하고, 왜적에 당당히 맞서 청주성을 수복했다.

이처럼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 속에서도 끊이지 않았던 당쟁(黨爭). 동·서 분당은 북인·남인·노론·소론 등의 사색당파로 분화됐다. 당쟁은 영·정조 시대 부흥의 역사조차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구한말의 치욕을 경험했다.

조선 개국 518년 뒤, 임진왜란 발발 318년 뒤인 1910년 8월 29일 우리 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했다. 일제가 대한제국에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날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다.

앞서,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해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파견한 이상설(진천), 이준, 이위종 등 3인이 한국의 억울한 사정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려 하자 오히려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후 국내·외 곳곳에서 본격적인 항일 의병투쟁이 시작됐다.

임진왜란과 을사늑약 등을 전후한 충청 민중의 봉기의 흔적은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민족 대표 33인과 함께 동학운동과 3·1운동을 기획한 손병희(청주)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의 혼이 서려 있는 사당(祠堂)과 항쟁의 기록들은 후손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옛 속담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조선민중의 수급(首級) 대신 코를 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받쳤던 굴종의 역사에서 시작된 셈이다.

1598년 전쟁광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00년 이상 지속된 일본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가 됐다. 그가 설립한 '에도 막부'는 250년 간 지속됐다.

'에도 막부' 시기 일본은 체제 안정을 통해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가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조선은 친명사대와 중립외교로 갈라졌고, 결과는 '인조반정' 뒤 결국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으로 이어졌다.

구한말 역시 쇄국(鎖國)과 실리 외교(外交)가 충돌하면서 일본의 전성기를 이뤄낸 '에도 막부'와 다른 길을 걸었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제 항일의 아픈 상처를 딛고 새로운 미래 100년을 위한 힘찬 용트림을 해야 한다.

가장 먼저 남북의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를 바탕으로 한반도가 '동방의 빛'으로 우뚝 서야 한다.

충북은 호남과 부산~청주~서울과 강원을 잇는 국토 X자축 철도망과 중부권 허브공항을 꿈꾸는 청주국제공항을 중심으로 강호대륙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

청주를 출발한 고속철도가 강원도와 조선시대의 동북면을 거쳐 이순신 장군의 녹둔도(러시아 하산)까지 힘차게 내달린 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신(新) 실크레일'의 꿈을 키워야 한다.

청주국제공항을 동아시아 허브공항으로 육성해 백두산과 나진·하산,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실타래처럼 연결해야 한다.

이 길목에서 우리는 더 이상의 정쟁(政爭)은 필요 없다. 남북 주민 8천만 명과 조선족까지 1억 명에 달하는 한민족이 함께 만들어 갈 '동방의 빛'.

그 중심에 충청북도가 우뚝 서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김동민 편집국장
○사진설명
1-20세기 초 대형 태극기(20세기초)

2-소형 태극기(대한제국)

3- 태극기(20세기 초·중반)

4·5-일장기 개조 태극기(해방전후)

6-미군정 김천 태극기(1945년)

7-미군 한국 상륙 이동경로 표기 태극기(1945년)

8-1946년 어린이날 기념 소장 태극기(1946년)

9-1950년 인천상륙작전 기념 소장 태극기(1950년)

10-미 해병대 서명 태극기(한국전쟁 당시)

11-참전 병사들의 서명과 구호가 적힌 태극기(인천상륙작전)

12-한국군 병사가 미군에게 증정한 태극기

13·14-한국전쟁 참전 병사들이 서명한 태극기

15-미주지역 자수 태극기

16-현대 태극기.

/ 사진자료 제공= 한국교원대(재미교포 이병근씨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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