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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선열들의 숨소리를 듣는다-⑬이동휘 선생

흩어진 민족운동세력 규합한 혁명가
보창학교 설립해 민족교육운동
동지들과 한인사회당 창당
기관지 발행·한인적위대 조직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웹출고시간2019.07.01 16:41:35
  • 최종수정2019.07.01 19:50:29
[충북일보] "이천만 동포는 최후의 일인이 죽을 때까지 독립을 도와 이루게 할 줄로 확신하노라"

충북북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동휘(1873.6.20~1935.1.31) 선생을 홍보하고 나섰다.

이동휘 선생

ⓒ 독립기념관
1873년 6월 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한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대중을 자각시켜 구국운동에 나서게 하기 위해 교육문화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기독교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라는 신념에서 기독교 전도활동에 힘썼다.

선생은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의 지도자로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3월 안명근·양기탁사건에 연루돼 일제총감부에 체포돼 인천 앞 바다에 있는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보내야했다.

1912년 6월 유배에서 해제된 선생은 1913년 2월경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탈출했다.

선생은 북간도 한인자치기관인 간민회를 지도했고, 북간도 각지를 순회하며 신교육 보급과 기독교 전도활동을 계속하며 동포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러일전쟁 10주년이 되는 1914년에는 제2의 러일전쟁 발발에 대비해 항일광복전쟁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선생은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세력을 규합한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으며,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1918년, 선생은 하바로브스크에서 김알렉산드라, 유동열, 김립, 오성묵, 오와실리, 이인섭 등 동지들과 최초의 한인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 발행, 군사학교 설립, 일본군병사들을 상대로 한 반제반전(反帝反戰)선전, 한인적위대 조직 등을 추진했다.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취임했으며, 상해임시정부는 선생을 비롯한 주요 각원들이 취임함으로써 지지기반이 훨씬 확대됐다.

선생은 안정된 체제에서 방안을 찾는 정치가라기보다는 혁명적 방법에 의해서만이 조국광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던 진보적 민족혁명가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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