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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불 꺼진 교회 기도실에 들어서 커튼을 좌우로 밀어 제쳤다. 가로세로가 육십 센티 정도요, 높이가 오 센티미터쯤 되는 사각방석이 십자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석양빛이 방석위로 조용히 흐른다. 침 튀긴 자국이 파편조각처럼 촘촘하게 무늬를 만들어 놓은 것이 힘 잃은 저녁햇살에 여울진다. 마음이 고단한 누군가가 금시 다녀갔는가 보다. 화장지로 쓱 닦아내곤 방석을 깔고 앉았다.

신께로 가기 전에 먼저 받아 주는 방석, 그 위에 늘펀하게 앉으면 일체의 감상이 배제되면서 담백하고 편안해진다. 방석에 엎드려서 마음을 쏟을 때는 너그러워서 좋다. 사람에게 말할 때처럼 까다로울 정도로 논리적이거나 군더더기를 걸러낸 세련된 말을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 모호한 발음이나 묵언이어도 괜찮다. 다만, 속내를 뱉어내는 격식 없는 진실한 언어들이 방석위에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면 된다.

시간은 마음대로다.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한 가닥 국수발을 뽑아내듯 토해내며 소살 거린다. 모진 세상에서 실패하고 놀란 가슴으로 찾아와 방석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눈물 콧물 흘리는 이도 있고, 억울함을 사람에게 풀지 못해 응어리진 심사를 남모르게 토해내는 이도 있다. 말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지칠 때면 오래 그리워한 사람을 대하듯이, 조용히 방석에 이마를 대고만 있어도 좋다.

살다보면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처럼 평안을 잃고 당황하여 공연히 허둥대는 그런 날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어진다. 젊은 날에 그랬던 것처럼 친구를 불러내 마음을 터놓을까 하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그런 일은 그만둔다. 친구와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오는 허탈감이 싫기도 하지만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로 오히려 개운치 않아서다.

방석은 신께로 가는 무릎을 포근히 감싸주는 매개체다. 납작 찌그려 받쳐주기에, 보채지마라 당황하지마라 따뜻함이 있는 여기서 쉬면서 새 힘을 얻고 가라는 음성을 듣기까지 버틴다. 나의 속사정을 무조건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편안하다. 내 울음의 곡조를 잘 가려 알아들으시며 나를 조성하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신께 올리는 절실함 들이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수직으로 닿아지도록 촉매역할을 한다.

방석처럼 듣기만 하고 남의 아픔이나 치부를 발설하지 않는 침묵의 사람이 많으면 참 좋겠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어려운 자리에 갔을 때 끌어다가 살포시 무릎을 덮는 방석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을 가만히 덮어주는 너그러운 사람이고 싶다. 바닥을 보여주지 않고 고요히 흐르는,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그저 누군가의 곁에서 가만히 흘러 주기만 해도 그의 삶의 길목이 환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픈 사람들의 눈물받이가 돼주는 방석 같은 사람 누구인가. 한숨 배인 베개 같이 눈물을 받아 머금는 그런 사람, 외로운 이들이 찾아와 기대이면 친구가 돼주는 방석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서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웃음을 주는 평화의 도구로 쓰이면 좋겠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방석만큼만 말없이 제 할일을 하며 살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는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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