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돌아가 기억해 내기엔 빛이 바랬잖은가. 이미 건너버린 세월의 강, 단절되어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해 낼 수 있을까. 약속 날을 잡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성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밥을 먹기보다는 분위기 있는 카페를 택했다. 그런데 이 설렘은 뭔가. 날짜가 다가오자 전날부터 설레는 거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는 일 또한 오랜만이다. 그런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누구와 약속을 하면 미리 가서 기다리던 평소 습관과 달리 자주 가던 카페건만 입구를 놓쳤고, 공사 중이라 한참 가서 유턴하다 보니 15분은 늦을 것 같다.

첫 만남부터 망쳤다. 우정이라 말하기조차 흐릿한 여린 기억들을 의존하며 길을 나섰는데…. 망쳐버렸다. 우리 사이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은 그녀도 같을 것이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왔던 기억이 전부일 뿐이니 추억이랄 것도 없는 사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자' 하며 그녀 음성을 소환했다. "너는 늘 궁금했어…." 반세기를 넘겨 연결한 첫 통화 중 그녀가 한 말이다. '너는' 이란 말을 되뇌다가 그녀 기억 속에 내가 남아 있었다는 말로 단정하며 기분을 전환했다.

카페에 들어서니 단아한 여인이 창을 등지고 앉아 있다. "저쪽으로 옮기자." 어서 얼굴을 보고 싶은데 마스크를 쓴 데다 창을 등지고 있어서 내가 말했다. 커다란 꽃다발이 그녀 품에 안겨 걸어간다. "딸과 상의했더니 꽃다발을 주라네? 작가니까 자기 책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면서…." 딸과 상의했단다. 나와의 만남을. 그녀도 설렜다는 뜻이다. 정서의 합일점이 있다는 건 만남을 이어 갈 수 있을 징조다. 어쩌면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우주를 맞아들일 수도 있겠다면서 마음에 달이 뜬다.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세월이 만든 고목과 안경에 낀 이끼들을 걷어내고 우리는 그 오래된 마법의 이름, 동심을 캐내기 시작했다. 비록 짧았으나 그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곳이다. 자연이 주인공인 곳, 진세나 풍진의 세상을 모르던 도화원이었다. 그러다가 과거 중심 대화가 현재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지금 모습 이대로의 상대방이 보였다. 그러다가 자연이었던 과거 모습에서 현재 모습이 되기까지 진화한 세월의 인자(因子)를 해적이 하며 서로를 뿌듯해했다.

나는 꽃다발을 받았고, 딸 예언대로 그녀는 내 수필집 세 권을 받았다.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 나만 있은 줄 알았다. 그런데 깊고 공허한 우물에 던져진 것 같았던 어린 날 나를 부러워한 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늦둥이라 엄마 머리가 쪽진 할머니였던 나는 파마머리 엄마를 둔 유복한 그 아이를 부러워했는데, 직장인인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살면서 외로웠던 그녀는 식구가 많았던 내가 부러웠단다.

지우개 인생도 있는 것처럼, 우울했던 지난 시간은 등 뒤로 던져 버리고 그녀도 나도 앞만 보고 달려온 말만 했다. 교장님으로 퇴직한 그녀와 다섯 번째 출간을 준비하는 수필가만 카페에 있었다. 지금 우리 모습만 진실이고 과거는 현재의 진실을 위하여 존재했던 허상인 양 했다. 산의 꼭대기만이 아니고 산 자체를 사랑해 산에 가듯이, 이제는 더 높이 솟는 산이 되기보다는 오름직한 동산이 되어 살자 했다. 노래하듯이 얘기하듯이 얽매임이 아닌 자연처럼 만남을 이어가자고 했다.

그녀와 가고 싶다. 천 가지 영혼을 가진 것처럼 산과 들이 색색으로 물드는 날, 소들은 어슬렁거리고 저녁 새가 낮게 날 때, 고향 강변에 가고 싶다. 노을에 물든 강변을 걷다 물에 어린 달빛을 보고 싶다. 마음을 보는 창을 가진 그녀와 함께라면, 남들은 기뻤다는 어린 날에 아픔을 안고 웅크렸던 얼룩들마저 너무 작은 먼지가 되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볶은 콩도 구태여 골라 먹는 까탈도 없어질 것 같다. 산 벚꽃처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간격을 두고 간다면, 깊은 곳에서 캐낸 암염처럼 존귀함을 잃지 않고, 도끼로 찍히면서도 향기를 내는 향나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에게 끌림은, 갑작스럽고 얄팍한 게 아닌, 깊고 진정성 있는 끌림이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