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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0.10 17:55:25
  • 최종수정2019.10.10 17:55:25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너희들 누구냐. 이름은 무엇이고 근원이 무엇이냐. 도대체 어디로부터 와서 언제부터 내 몸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게냐. 사람은 어릴 때 수두를 앓는데, 그때 생성된 바이러스가 누구나 몸속에 남아 있다지. 그렇게 척수 내에 잠복해서 신경을 타고 다니다가, 신경의 뿌리 신경절로 이동하여 똬리 틀고 자리를 잡는다지. 유추하여 볼 때, 내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옛날이라는 그날 나 역시 수두를 앓았을 것이고, 그때 내 몸 안에 생성되어 활동하다 남아서 도둑처럼 가만히 살고 있었으렷다.

나는 내 몸을 몰랐지 뭐냐. 젊을 때는 면역체계가 너희를 눌러 꼼짝 못하지만, 나이가 들어 면역이 저하되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면 활성화 되는 것을, 그런 이치에 등한했었지 뭐냐. 사는 게 전쟁인지라 세상과 전쟁을 하듯 살았고, 대수술을 두 번씩 하면서 건강을 되찾으려고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 승리하는 성취감을 맛보았으면서도, 지피지기 하지 못하여 무참히 당한 작금의 내가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너무 야속하다 마시오. 오래 고대하던 출정이라오. 그대 몸에 깊이 잠복하여 살며 언제 한번 꽃피워볼까 호시탐탐한 세월이 반세기를 넘겼소이다. 모르셨는지요· 존재한다는 건 언젠가는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들어 면역이 떨어졌건만, 우리네를 의식하지 않으시더이다. 충분히 수면을 해야 육체도 정신도 건강할진데, 토끼 눈으로 밤늦게까지 자판을 두드려대고는, 새벽기도 한다고 비몽사몽간 일어나더이다.

식습관은 이상하고요. 우리를 무력시키는 식품들은 싫어하고, 우리를 활성화 시키는 음식들만 먹더이다. 이번만 해도 그렇소, 두 달 내내 내달린 과로와 훨훨 화火가 춤출 일이 연일 생길 때 알아차렸어야지요. 애먼 우리만 누를 게 아니라 대나무 숲이라도 찾아가 체면불구하고 버럭버럭 소리라도 쳤어야 했소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출정조건을 갖추어 주었잖소. 바이러스들이여! 꽃 한번 피우러 밖으로 나가자!

듣고 보니 만세 부르며 나올 법도 했겠다. 그런데 너희들 치사하다. 초전박살이라도 당할까 눈치라도 본 게냐· 귀 주변으로 통증만 주고 수포들은 며칠 뒤에 보이고 말이다. 고통이 심하여 남의 편에게 호소했다가, 소파에 귀를 대고 자서 그럴 거라 핀잔만 듣게 하고 말이다. 우리부부야 무식하여 너희 출몰을 몰랐다고 치자. 동네병원 의사까지 감기로 진단하도록 속이다니, 닷새 만에 줄지어 나온 수포들을 보고 전문의에게 갔다가 현장체포당해 감금당하고 말았으니 그 용병술 참 대단하다.

너희들 주도면밀하더구나. 처음에는 망을 보듯 서너 개 수포를 보이다 이때다, 하고 순간에 줄줄이 나와 전격적으로 존재를 드러내 맘껏 고통을 주는 작전이렷다. 사람에 따라 옆구리, 가슴, 얼굴 등을 택하여 몰려나오는 너희를 단순피부병으로 오인하기 십상이지. 거참, 화산이 발화하는 소리 없는 통증은 상상을 초월하더구나. 대상포진帶狀疱疹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발진과 수포를 만들며 피부분절 따라 구름 띠를 두르고 피어오르는 너희들에게 내 기꺼이 악마의 꽃이라 이름 붙이겠노라.

도시 한가운데 섬으로 모여든 이들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지 뭐냐. 화를 밖으로 발산하여 타인에게 피해주는 게 싫어 속으로 누르는 이들이더구나. 사는 게 다양하듯 들어온 동기가 다양도 했단다. 다단계에 쌈짓돈을 털렸다는 팔순의 할머니, 직장에서 잘린 것이 억울하여 극한 화를 속으로만 꾹꾹 누르다 온 박여인, 그런가하면 올드미스 정양은 뭔 객기로 극기 훈련을 한답시고 2교대 근무를 하며 몸을 혹사시키다 왔다했지. 수포들은 일망타진 됐고 딱지들도 떨어졌건만, 이번에 발화한 바이러스들은 빙산일각이요, 내 몸 안에 아직도 너희무리가 남아 있다니 섬뜩하구나.

생각을 돌려보면 우리가 결코 나쁜 바이러스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거외다. 아하, 단백질 많이 먹어주라, 운동해라, 과로하지 말고 쉬어라, 잔소리 하겠다고· 여차하면 신문고 쳐대며 다시 출정하겠다고 겁박하는 게냐· 무섭다 야, 비싼 공부했는데 그리 어리석을까. 일단 6개월 뒤에 예방백신부터 맞을 거다 왜! 두 주간 유배생활이 다 나쁘진 않더라. 자고 먹고 치료하고, 자고 먹고 치료하고, 반복하는 그 허락된 자유라니…. 그 섬에서 생각해 보았단다. 왜 그리 살았을까…. 쇠털처럼 많았던 날들 중,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그리 많지 않고, 그런 건 신기루처럼 짧고 늘 야박한 것을, 세상과 차단하고 내한 몸 사라져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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