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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너무한 통증은 죽음과 비근하여 견디지 못한다. 너무 아프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꺼풀을 들지도 못하고 죽은 듯 있었던 적이 있다. 생살을 갈라 나쁜 속살을 베어내는 대수술을 했을 때였다. 비명도 통증을 견딜 수 있을 만할 때 나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세포를 예리한 유리로 쉬지 않고 찔러대는 살인적 통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잠시 쉬지도 않고 지속되는 통증의 늪에 여러 날 갇혀 있었다. 질펀한 통증은 뼛속을 파고들어 온 세포를 지옥의 나락으로 끌고 내려갔다. 혀에 백태가 두툼하게 앉아 음식을 먹지 못하고 수액에 생명을 의지했다. 가랑잎 같은 체격에 가죽만 남아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했었다. 그 정도를 단순히 아픈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너무 아픈 통증은 육체와 혼을 장악하고 뇌를 마비시켜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히니 죽음이다.

견디기 힘든 통증하면 여자들 산고(産苦)를 말하지만 견딜만하다. 나 역시 첫아이를 낳을 때 열여덟 시간 고생했으나 참을만했다. 그리고 자연분만은 통증에 리듬이 있어 쉬었다가 아프다. 띄엄띄엄 오는 진통부터 잦은 진통을 지나 정말 큰 통증은 아기가 나오는 순간 사라진다. 훗배앓이가 괴롭히나 일도 아니다. 산고를 감당할만한 통증이라 말하는 건, 경험을 하고서도 둘째 셋째를 계속 낳기 때문이다. 정말로 통증을 감당 못해 죽기라도 한다면 누가 아이를 계속 낳겠는가. 당시 나라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전 국민적으로 세뇌만 안했어도 나는 셋째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하여 힘들고 힘들지만 산고의 통증을 견딜만하다고 말하는 거다.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도 되지 못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적에 백구가 경부선 열차에 치여 죽었을 때엔 초상이 난 듯 울었다. 지금도 가랑잎이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우울하고 슬픈 음악에 심취하면 눈물이 난다. 그뿐이 아니다. 슬픈 영화를 보려면 손수건을 준비해가야 하고, 슬픈 연속극을 보노라면 옆에 있는 가족들이 고개를 돌려 우는 나를 구경한다. 살다보면 부부간에 다툴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내가 먼저 울어버린다. '도대체 울긴 왜 우는 거야!' 하고 남편이 혀를 차며 슬그머니 자리를 걷으니 싸움은 중단되고 만다.

그런데 너무한 슬픔을 당했을 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엄마 얼굴 감촉이 아직 부드러운데 돌아가셨다는 거다.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 숨을 몰아쉬었다. 장례기간 내내 슬픈 영화를 볼 때처럼 눈물을 철철 흘리지 않고 고양이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지인들이 문상 와서 연세는 몇이냐 지병이 있었느냐 장지는 어디냐 묻고 물으면 그저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눈물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물기 없는 건조하고 날선 유리조각으로 변해 심장을 후비며 몸을 축가게 했다. 한동안 멍하니 먹지도 자지도 않아 젖먹이를 생각하라고 남편이 달래고 달랬었다. 눈물은 그렇게 너무한 슬픔을 넘기고서야 봇물처럼 터졌다. 그 후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서 오랫동안 힘들었다. 슬픔도 익는다더니 삼십 년이 지난 지금은 엄마가 돌아가신 일이 너무한 슬픔은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엄마가 생각나지만 연속극을 보며 우는 것처럼 금시 일상으로 온다.

너무한 건 몰라서 감사하다. 지구 도는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고, 벌레기는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것이 감사하다. 수평선 너머는 너무 멀어 보이지 않고, 너무 가까운 속눈썹이나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서 감사하다. 너무 많이 보고 듣고 너무 많이 알려하지 말자. 부부간에도 상대방 세계를 너무 자세히 알려하지 말고, 적당히 보이고 들리는 세상에, 적당히 아는 한계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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