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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외출하려고 신발장을 열었다. 그 안에 가만히 세워있는 우산 둘에 마음이 머문다. 저들, 연인 같다. 둘이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처럼 너무 자연自然하다. 유려한 곡선손잡이의 키 큰 우산에 그보다 작은 우산이 기대어 있다. 서로 기댄 저들이 먼 나라에서 함께 떨어진 별똥별처럼 하도 다정해 보여서일까· 클림트의 그림 '키스'에서 느꼈던 몽환적 감상까진 아니어도, 갈라놓으면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문을 닫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풍경이 많지만 나는 가만히 다정한 풍경을 보면 감동한다. 화가가 종이 위에 드리운 꽃 그림자 명암이 화폭위에서 가만히 어울리며 다정하게 느껴지고, 까슬까슬한 린넨 식탁보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가만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것도 좋다. 낮게 흐르는 냇물바닥의 맑게 보이는 조약돌들 위로 쓰러진 가만가만한 물풀들, 그렇게 하나로 가만히 포개지는 것들을 보면 가만히 두고 싶다.

가을 코스모스에 대롱 입을 깊숙이 박고 꿀을 빠는 나비 한 마리의 평안을 깨지 않으려 발소리 숨소리를 죽이고 바라 본 적이 있다. 지나는 바람을 나른한 게으름 이불삼아 포만을 누리고 있는 나비가 흐뭇했다. 그 풍경을 가만히 두고 싶어 숨을 멈추었었다. 가장 가볍고 가장 보드랍고 가장 잘 흔들리는 꽃이 되어 제 몸을 내어주는 코스모스위로, 가슴을 내어주던 어머니가 겹쳐지면서 그날 눈물이 그렁했었다.

'네 몸속의 것을 내어주는 이 경건의식이 휴식 같구나.' 하고 예찬하니 '공기가 흐르고 있어 잘 쉬노라' 하고 화답하는 것 같은 코스모스의 소리를 그날 들었었다. 손위에 손을 포개듯, 복사꽃위에 뺨이 발그레하던 언니를 포개듯, 빗소리에 그리움을 얹듯이 가만히 라는 말의 미학이 얼마나 감정을 섬세하게 하는지 새삼 터득했었다.

그런 날 내감성은 잘 조율된 팽창한 현이 되고 한편의 시를 쓰게 된다. '사랑아 이 밤에 네가 바이올린하면 난 바이올리니스트하리라.' 노래한 한 시인의 말을 여지없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곤 '어둠에 묻힌 밤을 둘의 정한 선율로 채워나가니 갈바람 내음이 무쇠간장을 녹인다.' 하고 이어지는 그 다음 장면을 읊으며 무릎을 친다.

그런 날은 비약적으로 심오해져 사람들의 요동하는 표랑의식을 조응해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억울한 소리들로 인해 잠을 설치는 걸 보면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변명하거나 여기저기 호소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왕 단잠을 잤어야했다. 수술하고 입원했을 때도 마찬가지, 겉으로 조용한 나를 의료진이 칭찬들 했지만 그건 가장일 뿐이었다. 의지를 나뭇잎처럼 뿌리 채 뽑아 육신을 깊은 못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극심한 고통 중에 왜 하필 나냐고 현실을 원망했었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평안은 찾아오는 것을, 나는 뇌성이나 번개처럼 별안간 나타난 상황들을 새롭게 놓거나 대응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부리가 작은 새는 씨앗을 물어다 떨어뜨린 소나무 숲을 조상의 업적으로 기억하여 다 가지려 욕심내지 않는다. 울창한 숲을 원천적으로 있었던 것처럼 가만히 둔 채로 작은 가지 하나에 제 몸을 얹고 저 멀리 다른 하늘을 그리며 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가고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호수를 지나도 가고나면 호수에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말한 경전말씀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다 가지려 욕심내고 마땅히 해야 할 선한일 약간만 해도 흔적을 남기려 한다. 어떻게 하면 까맣고 모난 돌 같은 현실이란 굴레를 원망이 아닌 물처럼 공기처럼 부드러운 손이 되어 가만가만 만질 수 있을까. 어쩌면 아련한 꿈속에서 씨앗을 물어 나른 개미구멍 같은 옛날 위를 날고 있을지 모를 새한마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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