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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가끔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쓸쓸한 날은 길을 나서자.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기차는 여행자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로스엔젤리스를 여행 할 때, 길고 긴 화물기차가 씨에라 산맥 아래로 천천히 지나는 것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사계절 풍광을 느끼며 여행을 하리라 꿈꾸지만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겨울다운 풍경을 그리며 하늘내린 동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을 찾아갔다. 숲을 향해 걷다 고개를 드니 가냘픈 가지들이 코발트빛 하늘에 수를 놓는다. 은빛 피부를 가진 키 큰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빽빽이 서있는 풍경이 보여주는 이미지 때문일까? 완만하고 부드러운 임도를 걷노라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초입부터 무리지어 이어지는 자작나무그룹들을 보고 감탄하기엔 이르다. 자작나무숲은 금방 보이지 않는다.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3.5㎞의 눈길을 걷다 보면 서쪽방향 구릉에 자작나무숲이 꿈처럼 보인다. 숲에는 눈이 쌓여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자작나무 상징어처럼 순백 동화나라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는 팻말을 지나 하얀 숲으로 들어갔다. 하얀 눈과 하얗게 쭉쭉 뻗은 나무들의 어우러짐에 눈이 부시어 선글라스를 쓰니 편안하다. 하얀 나라 그곳에서, 속삭인다는 언어의 감미로움에 흥건히 젖어본다. 백야처럼 뽀얀 나무속살이 겉으로 드러난 느낌이 주는 혼미함인가? 영혼 없는 하얀 거짓말이라도 좋다. 오늘 만큼은 나무의 귀족들처럼 속삭여보고 싶다. 숲속의 백작귀족이 되어 줄 이 누군가. 공작가문의 처녀가 되어 작은 소리로 말하는 고백을 받아 줄이 누군가.

은밀하게 품은 사람과 함께 간다면 북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얀 나라 그곳에서 못내 영화처럼 고백하게 되리. 자작나무를 스치는 바람결처럼 부드러운 소리로 말하리. 나오다 입구에 있는 '느린 우체통' 앞에 섰다.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하얀 마음을 집어넣고, 우리네 삶만큼이나 고불거리는 한계령을 오르며 현실로 달린다.

한계령 정상 쉼터에서 쌍화차를 감싸 쥐고 깊은 동면에 들어간 설악을 건너다보았다.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견줄 수 없는 풍경이다. 신라935년 마의태자 일행이 서울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살이 에이는 추위와 눈보라가 하도 심해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지는, 그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보약이다.

남한의 대초원 대관령목장을 찾아갔다. 나지막한 능선들이 하얀 눈에 덮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파란하늘과 하얀 언덕위에서 천천히 도는 풍력발전기…. 무리지어 서있는 이국적인 풍경이 그림처럼 고혹적이고 매우 강렬하다. 혼자가 아닌 함께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느리게 도는 바람 날개들에게서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드넓은 목장을 승용차로 둘러보도록 배려하여 많은 이들이 자가용으로 관람한다. 그러나 우린 왕복 8㎞가 넘는 길을 걸었다. 눈길을 걸으며 사색하는 일은 천상을 걷는 느낌이다. 지정 코스로 걸어 정상에 오르니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다. 변함없이 푸름을 유지하는 바다는 그리움으로 늘 먼 곳에 있다.

'대자연은 만권의 책보다 더 많은 교시를 해준다.' 라고 쓴 진갈색 피켓을 보니 그해 '선자령'에서의 일이 스친다. 설국에 취한 그날, 우린 정상코스를 이탈하여 능선 하나를 늘여 탔었다. 자연의 교시를 잠시 잊은 무지, 스스로의 표정을 고집하고 싶음, 나답고 싶음의 만용으로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눈길에서 한참 고생했었다.

하얗게 빛나는 표피의 생명의 질서가 줄지어 서있는 자작나무 숲, 하얀 나라 언덕에서 천천히 도는 품격 있는 풍력발전기들, 그리고 파란 바다…. 내안엔 자작나무 한그루 심고…. 화화적인 느낌이 되어 어느새 그리움의 연못에 영혼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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