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첫 발령을 받고 출근할 날을 기다리던 딸이 하루는 이렇게 물었다. "남자 직원이 커피 타다 달라면 어떻게 하지요·" 당시 직장에서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시킨 일이 한창 문제가 되던 때인지라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딸로선 할 수 있는 질문이지 싶다. "그건 성차별 문제나 상하직급 문제가 아니야, 내가 마실 것을 탈 때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남녀 상관 말고 커피 드시겠냐고 먼저 말하면 돼." 하고 말해 주었다. 조선 중기, 유몽인의 설화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야화 들이 생각난다.

한 유생이 과거 보러 상경하는 중에 밤이 늦어 주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장정 넷이 유생을 넘어뜨리더니 자루에 보쌈해서 내달렸다. 한곳에 이르러 자루를 풀었다. 둘러보니 담장이 높고 행랑이 둘러있는 고택이었다. 그들은 유생의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화려한 방에 밀어 넣는 게다. 문이 열리더니 용모가 곱고 연소한 미녀가 시비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절을 하면서 동침하자 원했다. 맘을 다하여 온밤을 동숙하다 보니 북소리가 둥둥 울리더란다. 그런가 하면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대가댁 마님이 임진왜란 때 계집종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섰다. 강가에 이르러 배를 타게 됐다는데 아녀자 혼자 힘으론 배에 오를 수가 없더란다. 그때 건장한 뱃사람이 부인의 손을 잡아 배에 태웠다. 그런데 배에 오른 대가댁 마님 통곡을 하면서 "내 손이 네 손에 더럽혀 졌으니 어찌 내가 살아 있겠느냐?" 하며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과부재가 금지법'을 도입하여 실제로 시행하던 사회의 지배적 풍토는 불평등한 정조 관념을 만들어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의 유생 보쌈 이야기는, 과부에게 재가를 금하자 경제적으로 풍요한 여인이 돈을 주고 남성을 보쌈해다 이성에 대한 결핍을 해결하는 부작용을 풍자한 내용이고, 이수광의 '지봉유설' 내용은 당시 여성의 잘못된 정조 관념이 얼마나 기막히고 어이없는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상은 변했고 급기야 뒤집혔다. 여성들도 실력을 키워 당당하면 무시당하지 않고 리더나 중요한 선상에 얼마든지 설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뒤집혀도 남성이 하는 일을 여성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퇴직 공군비행 교수에게 이런 경험담을 들었다. 그분은 온갖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조종사의 꿈을 갖고 도전하는 여군 후배에게 조종사 훈련을 시킨 적이 있었단다. 그녀는 복잡한 기계를 다루고 하늘을 나는 과정에서 각종 절차를 정확하게 지키고 수많은 계기가 지시하는 숫자를 빠르게 읽어내 높은 점수를 주었단다. 그런데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고 융합시켜 돌발 상황에 적합한 동작을 이루어내는 데는 남자 조종사들보다 현격한 차이로 낮은 점수를 내더란다. 예를 들면, 낮은 고도에서 하나하나 나무들 종류와 특성을 구분해 내는 능력은 남자들보다 뛰어났는데, 고도에서 전체적인 숲의 모양이나 지리적 특성을 읽어내어 판단하고 결정한다든지,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부분에서는 남자 조종사들보다 못 미치더란 것이다. 그러한 특성으로 공군에서는 여자 조종사는 단순한 수송기나 헬리콥터 조종사로 거의 배치되고, 남자 조종사들은 전투기 조종사로 거의 배치된단다. 세상이 달라졌고 그걸 인정하지만, 모든 분야에 남녀 인력을 획일적으로 배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이지 싶다.

참다운 세상이란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정체성을 잃고 남성이 여성처럼, 여성이 남성처럼 되려고 하는 건 아닐 거다. 남성의 야성을 보며 마음 설레는 여성이 있고, 단장하는 여성을 보고 흔들리는 남성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지금은 직장에서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물정 모르는 상사는 없다. 간통죄를 폐지하고, 커피는 각자 타서 마시게 됐다. 그럼 참다운 세상이 된 건가?

나는 대한민국 공군 정책에 동의한다. 여자라서 넌 안돼가 아니고, 생도 중에 조종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동등한 기회를 주고 노력한 대가에 따라 보상하고, 각자 잘하는 분야의 특성을 살려주는 거다. 기회를 준 뒤에 객관적인 평가를 해서 배치하면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어도 불만하지 않을 거다. 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진정한 가치가 창출되어 세상이 멋지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