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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충북대 평생교육 수필창작반 강사

이번겨울에 중국 심천을 여행하던 중 북한청년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향이 평양이라고 소개한 그는 우리 가이드였다. 북한을 떠올리면 정서의 냉각이란 단어가 자연히 떠오른다. 내 주변에 사는 새터민 여성만 해도 그렇다. 탈북한지 수년이면 이곳문화에 적응이 될 만도 한데, 관심을 보여도 낭만적 도취 같은 건 모르는 듯 냉각된 무표정의 실재성이 보여 안타깝다. 또한 기계처럼 훈련된 북한 어린이들의 예능공연을 보면서 그 완벽함에 감탄하기보다는 안쓰러움이 들곤 한다.

그 청년의 첫인상도 다르지 않았다. 신념도 꿈도 없는 듯 휑한 눈동자, 감정이란 없는 만경벌판을 지나는 겨울바람 같은 한기가 느껴졌었다. 어머닌 평양에 생존해 계시는데, 심천에서 가이드 하는 형을 따라 나와 일곱 평짜리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단다. 냉장고세탁기도 없이 전기밥솥정도만 놓고 돛대 잃은 배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체재를 비하하거나 자랑하지도, 우리체재를 우월하다거나 비판하지도 않았다. 다만, 언젠가 서울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때 누군가가 애인은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얼굴에 한기가 가시면서 눈동자가 빛나더니 덧니를 보이며 얼굴이 빨개지는 거다. 버스창밖을 보면서, 최근에 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말했다. '사랑아! 그 꽃 같은 소망 사랑아!' 나는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사귀자는 청이 청혼개념이라 기본으로 집이 있어야 해서 자신의 처지로는 거절당할 것이 뻔해 고백을 못하고 애만 태우는 중이란다. 그럼에도 온통 그녀가 생각나니 조언 좀 해달라고 말했다.

차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손이라도 잡으며 밀어붙이라고 수원에서 왔다는 중년남성분이 소리치자 그러면 안 된다, 감동을 줘야 마음이 열린다, 그러다 놓치란 말이냐, 의견이 분분했다. "여기 글 쓰는 작가님이 계시니 한 말씀 해줘요!" 일행 중 한사람이 나를 지목했다. 좌중은 조용해지고 그 청년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행동이나 말도 좋지만 언변이 뛰어나지 않으면 편지가 유리하니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주라고 말했다.

"선생님, 실은 제가 태어나서 편지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거든요…. 남조선이든 이곳 여성이든 여성들 감정은 비슷할 것이니 선생님이 대신 좀 써주십시오. 집에 가서 제 글씨로 옮겨 적겠습니다. 정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청년이 이렇게 말하자 좌중은 박수를 쳐댔고 어느새 누군가가 하얀 종이를 들이대며 당장 써주라고 종용했다. 나는 흔들리는 차안에서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써내려갔다. "손님들을 모시고 심천민속촌으로 이동 중입니다. 오늘따라 먼 산이 그림같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00씨 때문입니다. 00씨와 함께라면 제 인생에도 꽃 같은 소망이 있을 겁니다. 쉬 꺼지는 촛불이 아닌, 해묵은 등잔에 기름을 채워주듯 부족한 점을 서로 보듬으며 오랜 세월을 00씨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만은 진심이니 제 마음을 받아주셔요….(중략)" 이렇게 그 청년의 심정이 되어 편지를 쓰다 보니 울컥했었다. 어쩌면 자기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쓸 수 있느냐면서 참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다고 그가 말을 했다.

사랑이 사람에게 끼치는 감동의 폭은 어디까지 일까. 나름 좋은 일들이 많다지만 단연 사랑하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애절한 사랑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온몸으로 발산하는 생동감으로 눈빛부터 반짝거리므로 덩달아 행복해진다. 타인에 의하여 생장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끼치는 영향은 단순행복을 넘어 삶의 활력과 도전과 자신감을 주기도 하니 외진세상에서 사랑만큼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도 없을 거다. 자신의 토양에서 형성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사는 그 청년에게 꽃 같은 소망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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