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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중 교장

간혹 해변에 닿게 되면 바닷물이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한다. 익숙한 풍경이고 모래가 펼쳐진 어느 해안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인데도 마치 그것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기라도 한 듯 몰두하기도 한다. 공연한 상념들은 덤으로 따라붙는다. 얼마쯤 바라보다 돌아설 땐 으레 신발에 모래만 잔뜩 묻혀오기만 했는데, 한두 번쯤은 생각이 딸려오기도 한다.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을 머금은 모래들은 색이 짙어진다. 파도가 모래를 적시는 범위는 늘 달라서 색이 짙어지는 모래들의 범위도 함께 달라진다. 때론 제법 위쪽에 있는 모래까지 흠씬 적시는가 하면 저만큼 아래서 힘을 잃기도 한다. 모래는 바닷물과 만나는 잠시 동안 색을 바꾸었다가 물기가 빠지면 자신의 색을 다시 바꾼다. 그렇게 모래와 바닷물의 만남과 작별은 해안선을 따라 꾸불꾸불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바닷물에 완전히 잠긴 곳도 있고 저 위쪽 물이 닿지 않아 바삭하니 마른 곳도 있다. 태풍이나 해일이 밀려오지 않는다면 내내 그 상태로 머물 듯하다. 그 두 곳 사이에 젖으면 색이 짙어졌다가 물이 빠지면 흐려지는 모래들의 공간이 두툼하거나 얇게 들쭉날쭉 자리하고 있다.

경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맞대고 있는 삶의 경계는 뚜렷해 보이면서도 모호하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는 그들 각자의 삶이 진동하며 일으키는 파동의 범위가 고유한 듯하면서도 서로 겹쳐지기 때문에, 누군가의 특징적인 모습이 한편으론 다른 누군가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장면들을 쉽게 접하곤 한다. 들고나는 바닷물에 색을 변화시키는 백사장의 모습이 그러한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경계의 은유로 읽힐 때가 있다. 바닷물에 완전히 잠긴 모래거나 물에 적셔지지도 않는 모래들은 말하자면 그 사람만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진해지거나 흐려지지 않고 자신의 색을 유지하고 있다. 바닷물이 밀려와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곳은 모래와 바닷물의 경계를 이루면서도, 그들이 만나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공간이다. 경계면은 곧 관계의 공간이 된다. 어떤 내용으로든 서로 접하면서 관계가 생성되면 그 부분의 색이 짙어졌다가도 멀어지면 흐려진다. 바닷물이 밀려드는 정도와 범위는 비슷하지만 늘 다르다. 때로는 뚜렷하지만 때로는 모호하다. 그러한 모습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의 특징과 닮아 보인다.

그러한 경계의 뚜렷함과 모호함, 우연성과 일시성이 관계의 다양성을 변주한다. 관계의 일시성이 허망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번거롭다 해서 경계면을 삭제할 수는 없다. 누군가와의 관계 맺음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관계 맺음의 경계면들이 제공하는 즐거움이나 부대낌을 빼 버린 뒤에는 공허가 남는다. 그 공허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관계의 즐거움 또는 부대낌은 경계면이 들쭉날쭉한 곡선의 형태를 띰으로 인해 커진다. 두툼하니 두꺼워지기도 하다가 얇고 가팔라지는 구역도 생긴다. 그래야 아름다워진다. 궁금증을 만들어내며 경계면에 관심을 모으게 하는 것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직선은 시원하게 보여도 금방 지루해진다. 관계의 경계면이 굽어지고 흔들리는 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계면을 마치 자를 대고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계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흐름이어서 일부러 찾아가 마음에 차오르는 기꺼움을 얻을 때도 그렇고 신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래로 번거로움에 빠질 때에도 그것만 싹뚝 잘라내 주머니에 넣거나 휴지통에 버리기 어렵다. 또한 발을 적시며 발자국을 찍어 놓아도 그 자취는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뒤를 따라오다가 바닷물에 차츰 씻겨 내린다. 그렇게 관계의 공간은 물을 머금어 짙어졌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하면서 열려 있다. 어쩌면 그 열려 있음으로 인해 매번 비슷한 광경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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