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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고 교장

이번 1학기에도 '교장선생님과 함께하는 심화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학생들이 모둠을 만들어 참가 신청을 한 다음 선정이 되면, 각각의 진로나 탐구 주제에 따른 책을 정해 읽고 교장실에서 나와 함께 토론을 진행하는 활동이다. 비경쟁 토론이지만 프로그램 타이틀에 걸맞게 심화된 수준의 토론을 한다고 하니 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참가한다. 지난해에 참여했던 학생들 사이에 호응이 좋았는지 이번에는 참가팀이 많이 늘어나서 실무를 담당한 학년부장선생님이 팀을 선정하느라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그렇게 해서 두 학년에 걸쳐 16개 팀이 정해졌다. 의욕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읽고 토론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니 마음이 흐믓한 와중에 한편으로는 그만큼의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슬그머니 끼어들기도 한다.

5월 둘째 주, 16권의 책이 도착해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였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학생들은 다시 시험준비에 몰두해야 하기에 늦어도 6월 중순까지는 토론 활동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전에 이 책들을 모두 읽어야 한다. 목록을 살펴보았다. 모둠별로 각각 책을 골랐으니 분야와 주제가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철학을 비롯해 소설과 자연과학 심리학 윤리학 관련 책들 사이로 기후위기의 시대상을 반영한 듯 환경을 이슈로 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발행된 책이 있는가 하면 발행한 지 꽤 오래되어 절판된 책도 있다.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어떻게 찾았는지 구해서 교장선생님 먼저 읽으라고 가져다 놓은 마음이 미덥다.

아무래도 토론 일정이 빠르게 잡힌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렇게 순서를 정해놓고 틈날 때마다 읽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은 다음 한 모둠에 한 권씩 토론을 진행해야 하니, 나이 들면서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 책 내용이 서로 섞이거나, 읽기는 했는데 핵심을 놓친다면 깊이 있는 토론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학생들과 약속이 걸려 있는 만큼 건성건성 건너가거나 훑어 읽기도 어렵다. 찬찬히 읽어가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핵심 내용을 기록한 별도의 파일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환경을 주제로 다룬 책들은 이미 접한 것도 몇 권 있고, 내용 또한 익숙하여 조금은 수월하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어가는 와중에, 책을 고르는 학생들의 안목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덕분에 다양한 분야로의 여행을 하는 듯하다. '죽음의 수용소(빅터 프랭클)'에서 출발하여 '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를 확인하고, '나라는 착각(그레고리 번스)'을 지나 '매혹하는 식물의 뇌(스테파노 만쿠스)'도 탐색한다. 아임 페터스(이기적인 뇌), 마이클 샌델(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저작은 학생들과의 활동을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서 문득 처음의 부담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양한 책들에 파묻히고 저자들이 내놓는 정보와 주장들을 놓고 눈망울 초롱초롱한 학생들과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나누는 활동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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