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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새로운 한해의 출발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 파장이 멈춘 지도 어느덧 여러 날이 지났다. 밀린 숙제를 하지 못해 답답한 학생 같은 마음이랄까. 꼭 풀고 가야할 일처럼 신년 벽두에 겨울 산에 도전해 보려고 나섰다. 깊은 계곡 안에 있는 설악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따뜻한 겨울이라지만 설악산의 겨울은 바람이 매섭다.

산은 녹음도 단풍도 열매와 낙엽도 내려놓고 흰 눈을 켜켜이 덮은 채 깊은 동면에 들어가 침묵하고 있었다. 커다란 산과 마주하자 불어오는 바람이 시린 뺨을 사정없이 후리고 후리기를 반복하여 오르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입구엔 눈이 없지만 묵묵히 서있는 우뚝 우뚝한 장대한 봉우리들이 희끗희끗 모자를 쓰고 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칼바람이 몸을 휘감아 가위가 눌렸다. 거대한 산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가오란다. 깊은 심호흡을 하고 한발 한발 내딛었다. 산을 향하여 점점 다가가니 움츠린 마음과 꽁꽁 언 몸이 조금씩 풀어지면서 그제야 산은 서서히 내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를수록 눈이 남아 있어서 마음까지 하얗게 물들인다.

겨울나무에 핀 순백의 눈꽃이 햇살에 부딪혀 별처럼 반짝거렸다. 하얀 눈 한줌을 소복하게 덮고 있는 오리나무 낙엽 한 장을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맘이 그득하다. 쌈 한 잎에 금방 지어 기름이 졸졸 흐르는 쌀밥을 올려놓은 것처럼 소담하다. 전설속의 설인이라도 만날 것 같은 설렘으로 정상을 향하여 올라갔다.

눈 쌓인 산자락을 타고 드넓은 설원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오른쪽 아래로 구불구불 겨울계곡이 내려다보인다.

마치 계곡이 농악놀이 상고를 휘두르다 이리저리 늘여놓은 것 같아서 일까? 불현듯 고향동네의 노총각 만철 씨가 생각났다. 직업도 없고 가족도 없는 그는 정초가 되면 동네 사물놀이패 주인공이 되어 상고를 휘둘렀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리듬에 도취하여 신들린 사람처럼 꽹과리를 쳐대던 표정이 진지했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 것은 사소한 것도 그리움이다. 소나무다! 탄성이 절로 터졌다. 산등성이 높은 바위틈에서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의지한 채 있다. 어느 분재가 저보다 아름다우랴.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고 자연이 가꾼 작품이라 더욱 귀하다. 물도 부족하고 기름진 흙 한줌 없는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세찬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느 친절한 손길이 소나무 씨앗을 깊은 산속의 너름 바위하고도 하필이면 중앙의 갈라진 틈새로 날라다 주었는가.

혼자가 아닌 둘이라 보기 좋다. 의좋게 기대어 보듬고 있으니 보기에 흐뭇하다. 자연이 주는 생명력이 아니면 어찌 저리 의연히 자랄 수 있으리. 모진 바람 견디고 윤기 흐르는 솔가지들이 대견하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의 존재는 작은 경점과 같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찰나처럼 여겨진다. 산과 산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한데 할 말이 많은 것은 사람들이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산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인내와 침묵 광활함 속의 어울림, 겨울 산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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