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미옥

수필가

단풍인가 사람인가. 단풍이 고운가. 사람이 고운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온 천지를 불태우던 날, 팔순 이상 되는 교회 어른들을 봉고차로 모시고 나들이에 나섰다. 울긋불긋 꽃단장한 어르신들 모습이 단풍보다 곱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질곡의 세월을 인내로 묵묵히 감내하면서 지금의 풍요로운 세상을 일궈 놓으신 분들이다.

단풍이 웃는가. 사람이 웃는가. 달떠서 얼굴마다 미소가 번지고, 창밖엔 발갛게 단풍이 웃는다. 초로인생을 지나 산수(傘壽)를 넘기고 구순을 바라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인생의 종착지가 같아서 일까.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한세상 살아왔음에도, 차가 한참 흔들며 달리자 살포시 눈감고 잠든 모습들이 자매처럼 비슷하다.

"오메! 저 사과 좀 보래유!" "그러매! 탐스럽기도 하네…." 문경새재 입구에 잘 가꾼 사과밭을 보고 어느 분이 시작한 감탄에 합창이 터졌다. "한방 찍고 가셔유!" 운전대를 잡은 목사님이 차를 세웠다. 가지가 늘어지게 달린 빨간 사과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았다. 노인이 노인을 부축한다. 도우미인원 부족을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왜 안 나오셔유·" 팔순을 넘긴 노인회장님이 차안에서 나오지 않고 계신 한분을 향해 소리치신다. "다 늙은 걸 찍으믄 뭐해유!" "아 얼렁 나오셔유! 이제 그만이지 내년에 여길 워찌 오겄어유…." 이분들이 문경새재 단풍을 보는 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내년에 어찌 여길 또 오겠느냐는 그 말씀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노인보행보조차를 의지하고 걷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서 허리 펴고 올려다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젊은이 못지않게 어여쁘다. 단풍은 장식일 뿐 주인공은 이분들이다. 오늘만큼만 행복하고 오늘만큼만 건강유지하시며 사시길 기도해 본다. 문경새재 매표소에서 전동차를 타고 영화촬영세트장까지 단풍사열을 받으며 올라갔다.

삼삼오오 걸어서 오르는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보고 손을 흔들어준다. 빨강 노랑 점퍼들 속에서 와락와락 터지는 가을하늘을 수놓는 웃음소리가 청량하다. 단풍이 아름답지만 즐기는 이들에겐 장식일 뿐, 주인공은 사람이다. 단풍구경을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푸짐하게 차린 더덕정식을 대하며 생일상보다 낫다 기뻐들 하신다.

식사가 무르익어갈 무렵이었다. 주문하지 않은 음료수를 주인이 푸짐하게 내왔다.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사람들 중 중년의 한 남성이 보냈다는 거다. 낯모르는 사람이 음료수를 사다니….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단풍나들이 나온 어른들을 뵈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대접하는 것이라며 단풍나무 숲으로 촘촘 사라져갔다. 돈 액수를 떠나 어머니를 그리며 대접하는 그 마음이 어른들 얼굴을 단풍처럼 웃게 했다.

돌아오는 길, 길가의 사과밭에서 사과를 사서 후식으로 드리니 천국여행을 하는 것처럼 행복하다며 기뻐들 하신다. 갈 때는 자동차전용도로를 탔으나 올 때는 이화령옛길로 오며 풍광을 즐겼다. "저기유… 지가, 춤을 추고 싶은데 워짜지유·" 한 분의 엉뚱한 말에 폭소가 터졌다. 한줄기 가을바람이 단풍 한 장 날리며 화답한다.

춤을 추고 싶다니…. 이보다 담백한 행복의 표현이 있을까. 새벽기도 한 번 거르지 않는, 평소 농담 하시는 걸 본적이 없는 고상하게 연세 드신 분이 춤을 추고 싶단다. 비교적 단란하게 살아오신 분임에도 자식들이 제각기 바쁘고, 시간이 나도 제 자식 데리고 나가지 늙은이를 데리고 단풍나들이 나오긴 어렵지 않냐 말씀하신다.

이화령 고개를 넘을 때였다. 정상에서 차가 멈춘다. "저기 정자로 올라들 가셔서 춤 한번 맘껏 추십시다요." 한술 더 뜨신 목사님이 자리를 깔았다. 춤을 춘다. 덩실덩실…. 음악도 악기도 없지만 몸이 악기고 음악이다. 목사님도 손잡고 얼쑤얼쑤 춤사위를 하신다. 구름도 새도 멈추고 구경한다. 단풍은 장식이고 주인공은 사람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