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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부셔버리고 싶은 사람,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미움이 북받치는 사람, 신이 계시다면 그를 지구에서 데려가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지, 그 정도는 아니야, 진짜 이 말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가 잘못되면 내 탓으로 여겨지니 내안이 지옥일거야. 누군가를 향하여 저주의 말을 하다 문득 이 부분에서 멈추어지는 그런 사람….

살면서 이런 미움의 대상이 한 번도 없다면 축복이리. 부끄럽지만 나는 마음으로 오래 미워한 사람이 있었다. 도덕관념하나는 철저한 분위기에서 자란 내게 치욕스런 일이 있었다. 직장동료 자취방에 놀러 갔던 하필그날, 그녀 월급봉투의 절반이 사라지는 일이 생긴 거다. 유일한 방문자였던 나를 의심한다는 말을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 혈기가 들끓던 시절이니 치솟는 화를 잠재우기 버거웠다. 모멸감으로 몇날 며칠 잠을 설쳤다. 그러나 그녀를 저주하며 나를 볶을 뿐, 싸울 용기는 없었다.

불과 서너 명의 직원이 다였는데, 나를 알만큼 아는 그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 했지만 변명하는 일조차 자존심 상해 함구한 채로 지옥 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다음 월요일 아침조회 때였다. "박 선생 받아. 유치원사정이 어렵다 보니 친척이란 이유로 임의대로 봉급을 반만 주었네." 원장이 자신의 조카였던 그녀에게 추가로 주는 게 아닌가. 나는 울음이 터져 그 자리를 뛰쳐나왔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미움의 씨앗이 심겨지면서 새로운 지옥이 내안에 형성됐다. 안색이 변한 내게 그녀가 사과했고, 쿨 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용서를 했음에도, 그녀를 보면 끈질기게 그 일이 생각났다. 좋아 널 용서했으니 이제 다 괜찮아 라고 말해서 되지 않는 것이 용서다. 어떤 설교를 들어도 전혀 그녀와 화평해지고 싶지 않았다. 화평해지기는커녕 안볼 수만 있으면 그러고 싶었다. 그녀가 결혼을 하여 떠날 때까지 좁은 공간에서 안 볼 수 없어 데면데면 하다가 헤어졌다.

눈에 안 보이자 그 일을 잊게 됐고, 마음이 평화로워져 해결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쓴 뿌리상처는 툭하면 무의식중에 튀어 나오곤 했다. 비슷한 상황을 보면 불쑥 화가 치밀어 객관적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가령, 내 아이들이 친구와 엉킨 일들을 내게 토설하면 과민하게 화를 내며 본적도 없는 남의 아이 편을 들어 야단을 치곤했다. 아이들에게 심하게 대한다고 남편이 책망해도 틀린 말 했냐면서 발끈하곤 했다. 집안 분위기를 망쳐도 내가 화내는 이유가 정당하다며 당당했다.

그런 부분이 치료할 나의 상처인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적치료에 관한 책을 읽을 때였는데, 조용히 눈을 감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떠올려 용서하라고 말하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씩이나 할 만큼 상처를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나의 어떤 점을 건드리면 과민하게 반응하는지, 그것으로 인해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닌가. 그랬다 내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래된 그 사건이 보였다. 끔찍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지, 하고 그녀의 사과를 받고선 오래 그녀를 미워한 내가 보였다. 그녀가 결혼할 당시 안보고 살아도 되게끔 먼 곳으로 시집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까지 했던 나였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오래 똬리 틀고 있었던 독항아리를 부셔버리는 눈물이다. 이젠 비슷한 상황으로 꼬인 사람들을 봐도 화나지 않고 객관적자세가 된다. 우리는 마음을 숨기고 고상한척 하는 일에 전문가들이다. 내안의 쓴 뿌리는 자신을 괴롭게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멸균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돌파하고 치유하는 건 용서, 형식이 아닌 진정한 용서뿐이다. 용서는 나를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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