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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혼돈의 세월 속에서도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남아있는 한 장의 달력이 어느 해보다도 쓸쓸해 보인다. 황망함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어릴 적에 어머니 손잡고 달력에 쓰인 숫자를 따라 그리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어느새 마음은 봄 눈 녹듯 누그러진다. 자상한 어머니 얼굴과 천진난만했던 어린 내 모습이 달력 위에서 방긋 웃는다. 달력을 꽉 채우고 있는 숫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그 숫자를 수없이 보내버린 내 모습은 많이도 변해 있다.

올해 달력의 첫 장을 넘길 때만 해도 설렘이 가득했는데 마지막 한 장을 남긴 지금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숫자가 말해주는 다양한 의미들. 올 한 해는 휴대폰으로 전해오는 숫자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숫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다. 그중 제일이 성적이리라. 내일이 대학 입학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다. 시험이 끝나고 받아보는 성적표는 과목을 합산한 점수는 높아야 좋지만, 석차는 낮을수록 좋지 않은가. 성적표를 받아보는 일은 학창 시절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며칠 전에도 느꼈다. 이맘때면 직장인은 근무평정이라는 결과를 알리는 숫자에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철렁 걸리는 가슴을 쓰담쓰담 하리라. 등수를 알리는 숫자는 아이나 어른이나 희비에 엇갈리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삶은 숫자와 함께 웃고 울고 있다. 나이 먹어 서글프기도 하지만 푸근하게 늙어가는 연륜이라는 숫자에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머니 손잡고 숫자를 배울 때만 해도 열 손가락을 펴고 굽히기를 반복하며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지나간 많은 시간 속에 묻어있는 내 삶을 가리키는 숫자들이 놀랍기만 하다. 순수했던 마음도 숫자와 함께 널 뛰며 하늘 높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지. 어느새 욕심이 가득 차 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열 손가락도 모자라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나이를 말하는 숫자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없이 가벼워지고 욕심은 작아져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는 숫자에 울그락불그락한다.

어느 순간에는 살아 숨쉬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명을 이어가니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자는 광고를 보는 동안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숫자를 꾹꾹 눌러 돕고 싶은 마음이 솟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곱지 않은 의구심의 수치가 높아진다. 사람을 평가하는 불가분의 관계인 숫자가 말해 주듯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평가해 본다. 숫자 놀음에 마음이 좌지우지되니 성인聖人이 못 되는 건 당연하리라.

성인들이 살다 간 모습은 탐욕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 욕심 없는 사랑을 베푼 삶이 아닐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마음 수양을 해야 가능할까. 열 손가락을 펴본다. 하나, 둘, 셋…. 동그라미 숫자 영이 말해주는 의미를 곰곰 되새겨본다. 우암산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관음사에 올라가 바라보던 둥그런 원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담아 본다.

매년, 이맘때면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해가 가는 것을 서글퍼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염병도 한 장의 달력에 함께 멀리 떠나보내고 싶은 갈망이다. 하루빨리 바이러스 감염을 알리는 소리가 멈추기를 바란다.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나고 맘껏 뛰놀던 시절을 나만 그리워하는 건 아니리라. 모든 이의 바람이지 않겠는가. 산다는 의미. 그것도 잘 산다는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19로 365일이 허비되고 있다. 코로나 환자 숫자 "0"이 지구에 사는 세상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바꾸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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