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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결혼하고 연년생 아들을 잃고 이사한 곳이 아파트였다.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공기도 답답하고 이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시 주택으로 이사하여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아파트를 정리하고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날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속이 후련했다.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으니 힘든 줄도 모르고 이틀을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집 안에 온기가 느껴졌다.

마음이 안정되자 두 필지의 나대지를 사서 설계를 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이 완성되자 아래 상가에 먼저 세를 놓았다. 지금 사는 집이 팔리면 우리는 그 후에 이사할 생각으로 2층은 비워 두었다.

상가로 세를 놓은 슈퍼가 눈코 뜰 새 없이 손님들로 북적거린다는 소문에 기뻤다. 부동산 사장님이 도깨비터라더니 맞는 것 같았다.

이사를 열흘 앞두고 단골 슈퍼에서 빈 상자 오십여 개를 얻어왔다. 옷은 계절별로 정리하여 박스에 담고 표시를 해 두었다. 부엌살림은 깨질세라 헌 신문지에 하나씩 싸서 상자에 담아 종류별로 견출지를 붙였다. 결혼하면서 4t 복사 두 대 가득 혼수를 해 온 것을 후회하는 날이었다. 귀중품은 미리 승용차에 넣어 남편과 아이들이 타고 먼저 출발하고, 나는 이삿짐 실은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함께 터덜거리면서 달렸다.

가는 길에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에 빨래하는 아낙네가 보였고, 그 아래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에게 사금을 모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학용품도 사고 용돈으로 쓰기도 한단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출발한 지 한 시간 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 누구도 그곳이 간이역이 될지 길게 뿌리 내리고 오래 살아갈 종착지가 될지 모른 체 이삿짐을 내렸다. 대문 앞에는 둘째 딸과 동갑인 듯한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찬찬히 바라보니 사금을 캐던 아이였다. 슈퍼집 딸이란다.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꼭 필요한 살림만 풀어 정리하고 방 한 칸에는 풀지 않은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러고 나니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거머리 같은 물체가 내 다리에 붙는다. 기겁하고 떼어내 힘껏 던졌더니 둘째 딸 얼굴에 가 붙는다. 다시 떼어내 던진 것이 슈퍼집 딸 눈에 가 붙었다. 떼어내려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사하는 날 이런 꿈을 꾸다니 불길했다.

슈퍼에 내려갔다. 그 집 딸이 밤새 눈병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꿈 얘기는 하지 못하고 안과에 데려갔다 오라고만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슈퍼사장은 이틀이 지나도 약국에서 안약만 사다 넣어주고 안과를 데려가지 않았다. 불안했던 나는 청주에서 유명하다는 K 안과에 아이를 데려갔다. 아폴로 눈병이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내일 병원에 오라는 의사의 말만 슈퍼사장에게 전해 주었다.

새로 시작한 공사 때문에 아이의 눈병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는데 슈퍼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K 안과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서울대 병원으로 출발하는 중이라고 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아이는 퇴원을 했다. 한쪽 눈을 적출하고 의안을 하고 내려왔다. 성장해서 눈이 커지면 맞춤 의안을 해서 넣어야 한다고 하니 무서워서 한시도 함께 살 수가 없었다. 이천만 원 하는 이층집을 천만 원에 급매로 하루 만에 팔고 이사했다. 네 번째 간이역에서의 아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나는 풍수지리를 공부했다. 터파기하는 날이나 이사 들어가는 날을 손 없는 날로 택했다. 내가 지어준 집에서 사는 모든 분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기도하면서 첫 삽을 떴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간이역을 통과하면서 70 평생 사는 가운데 두렵고 미안하고 눈을 맞추지 못해 야반도주하듯 집을 정리했던 네 번째 간이역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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