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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그날은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어서 어머니는 할머니를 모시고 장 나들이에 가셨다.

찰칵찰칵 굵고 투박한 가위소리가 들려왔다. 엿장수가 지나가는 소리다. 집 안 구석구석 빈 병이나 낡은 냄비를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물가에 놓여있는 놋쇠 대야가 보였다. 엿장수가 가기 전에 힘에 부친 무거운 대야를 가지고 가 엿판에 있는 엿 전부와 바꿨다.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그렇게 신이날수가 없었다. 동네 아이들을 모두 모아 엿판을 벌였다.

점심때가 지나 시장에 가신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오시면서 많은 엿을 보고 놀라셨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나를 앞장세워 엿장수를 찾아 길을 나섰다.

재래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멍석을 흙바닥에 깔고 옷감을 파는 분도 계셨고 기성복도 팔았다. 상자 안에는 토끼도 있고 어리속에 어미 닭이 품고 있는 노란 병아리를 팔러 온 아주머니도 계셨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은 역동감이 넘쳤다. "뻥이요!" 고함과 동시에 구수한 냄새가 시장 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면사무소 옆에는 냄비도 때우고 고무신을 붙이는 사람 등 놀라운 풍경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시장에서 친구 엄마를 만났다.

"여기서 뭐하고 있니? 엄마가 아래 장터에서 너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신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장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녔다. 장이 파하고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한산해진 다음에야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옷은 땀으로 범벅이 돼 동네 마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 손을 잡는 어머니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집에 돌아와 싸릿가지로 종아리를 맞았던 그 날의 시장풍경은 지금도 그리움으로 머물러있다.

청장년기에 시간은 금과 같다. 시간에 쫓기며 출퇴근하다 보니 느긋하게 시장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백화점 식품부나 농협마트, 다농, 이마트에 가서 필요한 식자재를 한 곳에서 구매했다. 시간 절약은 물론 신선해서 식감도 좋았다.

할매가 되면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침잠이 적어지고부터는 재래시장으로 가게 됐다. 때깔 좋은 하우스 채소보다는 노지 채소가 훨씬 더 고소하고 식감 또한 좋다.

시장 가까이 버스가 하차하는 곳에서 기다리면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내리는 촌로들이 하나둘 길옆에 난전을 편다. 새벽의 바람은 차다. 제일 연장자처럼 보이는 촌로에게서 가져온 푸성귀와 봄나물을 모두 샀다. 고맙다며 내 손을 잡는 촌로의 손등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엉겅퀴처럼 까슬까슬하다. 얼른 집으로 가셔서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녹이셨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나물 보퉁이를 들고 싱글벙글하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시장 안은 음산할 만큼 한적하다. 생선, 채소, 옷가지에도 호패처럼 가격표가 붙어있다. 흥정 없이 필요한 물건을 돈을 내고 사가라는 뜻으로 보인다. 매일 전쟁터 같던 시장 안은 폭탄 맞은 거리처럼 스산하니 냉기가 돌았다.

구면인 옷집 사장님이 차 한잔하자며 불러들였다. 역병으로 장사를 접어야 하나 생각이 많단다. 세금도 내야하고 월세도 밀리니 한 달 한 달이 고역스럽다고 했다. 난전에서 장사하는 촌로들 때문에 장사가 더 어렵다고 볼멘소리다. 옷 장사와는 상관이 없지 않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채소나 과일을 사러 들렀다가 옷도 사서 가는데, 신선하고 싼 맛에 난전에서 사고 바로 돌아간다고 했다. 공감은 하면서도 어느 편을 들어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은 흥청거리는 맛이 있어야 하고 갈지자로 걷는 노장도 있어야 제맛이다. "뻥이요!"하고 뻥튀기 터지는 기계음도 들리고 엿장수의 묵직한 가위소리도 있어야 한다. 몇 년 만에 시장에서 만난 친구와는 안부도 묻고 회포도 풀고 뜨끈한 곰탕 한 그릇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있어야 제맛이지 싶다.

떡장수, 묵장수, 국수 장수, 활기에 넘치고 가지가지 소리에 소란스러운 시장 바닥. 그곳이 바로 삶의 현장인 것이다.

오일장마다 생선 한 코 손에 들고 훠이훠이 내젓는 팔자걸음에 생선 비린내를 묻혀오던 할아버지의 명주 두루마기를 끌끌 혀를 차며 손질하시던 나의 할머니 모습이 재래시장에서 갸웃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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