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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손녀를 유아원에 데려다주고 느릿한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보도블록 사이로 얼굴을 내민 민들레와 눈도 맞추고 학교 담장을 감싸고도는 덩굴장미도 보며 장구봉 둘레길을 걸어 정상에 앉았다.

아래로 보이는 2차선에는 차들이 줄지어 간다. 유년 시절의 동네 길은 구불구불하여 숨바꼭질하기 딱 좋았다. 가던 길 돌아 담 모퉁이에서 놀래주던 생각에 웃음이 터진다.

버스가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유년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신작로에 흙이 파여 나간 곳에 잔자갈을 채워놓아 그 위를 버스가 달리면 덜거덕덜거덕 널뛰기하였다. 운전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밟는 날에는 책가방이 날아오기도 하고 남학생 무릎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서로가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던 학창시절이 그리운 신작로의 흙길은 아스팔트보다 정감이 있어 더 좋았다.

비가 오면 비를 품었다가 가뭄이 들면 내어주기도 하고 화단에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기도 했다. 지금은 길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을 하여 비가 오면 스며들지 못하고 곧장 강과 바다로 간다. 가뭄이 쉬 들고 사람들 인심도 아스팔트 길처럼 삭막하다.

흙길에는 나눔과 온기가 있다. 산길에서 목이 마르면 다래나무를 잘라 목을 축이고 다래 덩굴로 묶어두어 다른 사람이 쉽게 먹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열기 오르는 아스팔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 한 모금조차 나누지 않는 것이 길 없는 사막 같은 생각이 든다.

앉았던 장구봉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장구름이 체알을 친다. 천천히 비를 맞으며 걸었다. 열을 품었던 길에서 뿌연 김을 뱉어낸다. 우리가 사는 현시대처럼 혼탁해 보였다. 유년 시절 흙길이 패여 비가 오면 작은 도랑이 길 위에 생겨도 불편한 줄 모르고 잘박거리며 걷던 그 길이 그립다.

지금도 가슴 뛰게 하는 60년 전 추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길 위에 길이 있었다는 것을 몇 사람이나 알까?

소방서 입찰을 받고 ㅇㅇ군네 자주 들렀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찰이 있고 많은 환자를 치료해준다고 감리 나온 공무원이 알려주었다. 산후풍으로 고생하던 나는 다음날부터 침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큰길에서 1㎞떨어진 곳에 사찰이 있었다. 왕래하는 차들로 길은 움푹 파여 웅덩이가 되어있었다. 앞서가던 승용차가 웅덩이를 피해가다가 논둑을 타고 넘어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가던 길을 후진하여 큰길가로 나왔다. 레커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이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착하니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의 머리 위에는 수치 침이 꽂혀 반짝거렸다. 침이 꽂혀 있는 자리들이 밤 가시처럼 보였다.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뒤돌아 앉아 침을 맞았다. 머리를 거울 속에 비춰보니 다른 사람보다 많이 꽂혀 있다. 침 꽂힌 자리를 점검하며 침 자리도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픈 자리까지 혈이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침을 꽂아 뚫어준다는 것을.

다음날은 늦은 시간에 사찰에 도착했다. 스님도 한가해 보였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무교라고 했다. 도가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으신다. 스님들이 찾으려는 도와 사람이 걷는 길과 사람의 도리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도는 모르지만 내 마음자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나침판이라고 말했더니 웃으신다.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산후풍으로 고생을 했다. 바람만 불어도 머리가 시리다. 관절 마디로 바람이 드니 고통스럽다. 사계절 몸을 따뜻하게 하고 모자를 분신처럼 쓰고 다녔다. 소방공사로 인연이 닿아 침을 맞고 효과를 보았다.

내가 은혜를 입었으니 해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작은 사찰에서 길을 보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길을 닦아주기로 마음속으로 정했다. 25t덤프와 O텐과 롤러를 가지고 현장에 도착해 흙을 쏟아붓고 굴착기로 다듬고 롤러로 다졌다. 반듯하고 단단한 길이 만들어졌다.

마음이 뿌듯하다. 불편하던 길이 마음 한 번 먹으니 훌륭한 길이 되었다.

험한 산에 오르는 길은 약초꾼들이 첫걸음으로 길을 내고, 산나물 뜯는 여인들이 뒤따라가다 보면 사람과 짐승과 바람의 길이 나게 된다.

목표가 있으면 길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없어 보여도 찾으면 있는 것이 길이다.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기를 원하면 거기 길이 생긴다. 우리가 걷는 길, 자동차길, 배가 가는 길(선로), 비행기 항로 모두가 질서를 지켜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나는 새해 소망하는 것이 있다. 6.25 남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는 입대하였다가 소식이 끊긴 작은 아버님을 애타게 찾으시다 눈도 못 감고 임종하셨다.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에 자리 잡은 경의선이 연결되어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철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반세기 넘는 세월 떨어져 지냈던 한을 풀고 웃으면서 저승길을 떠난다면 먼저 가신 선열들이 무궁화 꽃 등을 밝혀 길을 안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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