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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1569년 봄 퇴계선생은 선조의 허락을 간신히 얻어 고향 도산으로 물러나신다. 선생의 14일간 700리 귀향길이 고지리학자의 고증과 답사 후 2019년 퇴계선생 서세 450주년 기념으로 후학들이 걸어 재현되었다. 이듬해 계속하려던 걷기가 코로나로 연기되었다가 금년에 철저한 방역 준칙 이행 하에 어렵사리 추진되었다. 이번 제2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는 구간별 4명으로 걷는데 전 구간 중 충북 내 3일간의 여정 가운데 가흥초부터 충주감영까지의 20km 오십 리 길 걷기에 참가했다.

斯界의 학자들과 종일 묵언수행으로 걸을 수는 없어 관련 서적도 다시 살피고 트레킹화랑 두터운 양말로 발바닥 부담을 대비하노라니 슬며시 설렌다. 걷는 동안 카메라에 담은 내용은 유튜브로도 방영된다니 의상도 갖추어야겠는데 오래 전 계룡산 합숙 출제 후 샀던 방립(方笠)이 책장 위 구석에서 눈을 맞춘다.

팀장은 한국학진흥원 이갑규 교수이며 안동대 안병걸 명예교수, 진현천(걷는 사람)으로 한 팀이요, 전일 걸었던 운광스님과 이원봉 전 도산서원 별유사님 두 분이 멀찍이 뒤를 따라 총 6명이 걷는다. 8시 경에 가흥초 잔디밭에서 갓과 하얀 도포로 의관을 갖추고 도산십이곡을 부른 뒤에 환복하고 길을 나섰다. 2년 전에는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졌었는데 꽃은 이미 졌고 신록이 무성하다. 물소리 큰 저 강은 배가 여울에 쏜살같이 내려가다가 파손되기도 하여 여기서만 전문적으로 배를 대어주는 선사 사공이 있을 정도로 물살이 급하단다. 중원군에는 금가, 이류, 산척, 동량면 등 이상야릇한 이름이 유독 많은데 막흐르기 여울이라니 차라리 편하다. 한식경을 걸어 못 한가운데 남녀의 성기를 닮았다는 사랑바위를 보고는 일행 중 수행자인 스님이 궁금하다며 먼저 길을 벗어난다. 사진을 찍으려 뒤를 받쳐주는데 5대 독자 부부가 대를 잇지 못하여 연못에 동반 투신했다는 애달픈 사연은 바람에 날라 가고 급경사를 내려오려니 목전의 안위로 정작 바위 모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자 소를 올린 것이 37회나 되는데 69세 되시던 해 드디어 마지막 귀향길에 올랐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선생께서 길을 걸을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선비는 군주가 하늘을 대신하면 나아가고 불연이면 물러난다 하는데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바치고 물러나시니 필시 평소 소망을 이루고자 함이겠지. 50대에 퇴계(退溪), 60대에 퇴도(退陶)로 자호하셨는데 그 많은 글자 중 왜 물러날 退로 잡았으며 계상으로 물러나려 하심은 무슨 의도가 계심인가 등등으로상념이 길을 잇는다. 선생의 일생 궁극적 지향점이 학문의 완성이요 학문에 매진하려 물러나고자 했으니 가히 退藏之貞(물러나 마무리함은 잘 하였네)이런가.

퇴계학 연구자 안 교수님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중앙탑을 지나 충주 시내로 접어든다. 강한 봄바람에 삿갓이 날아가지 않도록 한손으로 갓모퉁이를 잡고도 모자라 고개를 숙이고 걷는데 지나는 운전자들이 쳐다본다. 죽장을 아니 잡아 그런가· 젊은 저 사람들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라는 김삿갓 노래를 모를 텐데.

나아감이 있어야 물러남이 있고 길이 있어야 길을 걸을 수 있나니, 성현은 속이지 않는다고 굳게 믿은 선생처럼 선생의 길을 믿고 걷다보면 배움을 얻으려니 생각하는 중 목적지인 충주 감영이다. 오늘 걷기의 화두를 마음으로 잡았는데 持心, 存心은 아득하니 구방심(救放心-달아나려는 마음을 다잡는) 정도라도 좋으련만 어디 그리 되겠는가. 청령헌 옆 왕실 관련 인사가 머물던 제금당 마루에서 이교수님의 시 창수로 여정을 마무리 하면서 이 귀향길이 산티아고나 제주 올레보다 더 비중 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길로 자리 잡아 많은 사람들이 채우면 좋겠다.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높은 산 우러르며 큰길을 따라 걸으면 저절로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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