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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나이가 들면서 한번쯤은 마당 있는 주택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산책 길에 이따금 보이는 마당 파아란 집들은 낭만과 여유 자체로 보여 날이 갈수록 단독주택에의 열망이 커져갔다. 꿈이 생생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드디어 고즈넉한 외양에 마당의 반송도 훌륭한 집이 나타났다. 『5백년 명문가의 내력』에서 명문가는 문필봉을 대하고 마당에 너른 바위가 있다던데 파란 잔디에 놓여있는 마당바위에 다른 것은 더 볼 것도 없다. 저 바위 위에서 아내랑 차도 마시고 앉아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보면 좋겠다 여겼다. 실상 극성스러운 모기가 훼방을 놓기는 하나 이따금 마당의 잡초를 뽑느라 아픈 허리를 바위에 누이고 하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유럽을 서너 번 다녀본 뒤에 지었다더니 내장재도 잘 썼고 마감도 훌륭하다. 한 여름 더위에 창문 활짝 열고 자면 원두막 같고, 창문으로 가을 달빛을 한 아름 들이고 잠들면 광한루가 되는 이 기쁨.

그런데 옷방 구석에 놓인 금고가 전혀 안 어울린다. 평생 책만 가까이 하며 理財에는 문외한인 백면서생에게 금고는 도대체 어불성설이요 몸 하나에 달랑 가방 하나로 장가들어 예까지 온 사람에게 사치품일 뿐이다. 크기는 성인 하나가 구겨 들어갈 만하고 무겁기는 장정 여나 뭇이 들어도 꿈쩍 않는다. 전 주인이 두고 간 것도 신기하지만 이삿짐센터 사장에게 혹 필요하면 가져가시라 하자 너무 무거워 잘못하면 사다리차만 부서진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는 수 없이 가구의 하나로 놓고 있으려니 슬몃 안이 궁금해진다. 열쇠도 없고 비밀번호도 몰라 전문가를 불러 불요불급하게 돈을 넣을 처지도 아니라 금고 여는 비용만 공연하니 아내 말대로 자주 쓰는 물건이나 올려두고 그냥 쓰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금고를 깔고 앉은 사주팔자라 하던데 혹 내 사주에 금고를 끼고 살 팔자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옷 방에 들어갈 적마다 눈에 걸린다. 마치 양복입고 갓을 쓴 듯 예복에 운동화를 신은 듯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저 물건이다. 혹 저 안에 이상한 게 들어있지나 않는지, 괴기소설처럼 사랑하던 여인을 위하여 지었다는 이 집의 누군가가 백골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흔들어 볼 엄두도 못 낼 등치를 보면서 발칙한 상상까지 든다.

일본 사람들은 금리가 낮은 은행을 믿지 못하여 가정에서 금고를 사용한다고 한다. 쓰나미 때 이 금고를 노리고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당국이 진땀을 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에는 매몰된 점포의 금고를 노린 사람들이 떼거지로 붕괴 현장을 찾았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었다. 이렇게 금고는 돈이 있는 사람을 위한 물건인데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설사 돈이 없으면 귀중품이라도 넣어야겠는데 그만한 귀중품은 더더욱 없다. 반소사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에 팔을 베고 누웠으니 그 가운데도 즐거움이 있도다)이라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을 읊고 살았는데 사장도 아닌 선생이 생뚱맞게 대형 금고를 끼고 살게 되었으니 우습다.

마침 내부 인테리어로 가구를 전부 들어내는 김에 사장에게 금고를 치워 달라 부탁하였다. 장정 여러 명이 와서 간신히 금고를 들어내어 크고 튼튼한 사다리차에 실어 내리는데 몇 년 동안 쌓였던 밑의 먼지까지 예뻐 보인다. 한때 주인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았던 놈이 집 뒤 산록에 버려져 이따금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다가 길냥이의 놀이터가 되기도 함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소용이 되기를 바랐다. 얼마 후 고물상 이나 누군가가 가져갔는지 안 보이니 그제야 홀가분하다.

금고도 없는 단출한 집이 되었으니 이제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읊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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