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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7.17 17:09:53
  • 최종수정2019.07.17 17:09:5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기미 독립 운동 만세를 부른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100년 전의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거의 죽고 없지만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고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리 오랜 과거라고 하기는 어렵다. 2019년이 밝아오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들이 있었지만 3월이 지나고 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다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고 배척하기만 할 뿐 진정으로 우리가 일제의 악랄한 민족혼 찬탈 전략을 파헤쳐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해 본적이 있는가· 아직도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태평양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의 청년들과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의 소녀들에 대하여 일말의 반성도 없이 우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본에 대항하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과제 중에 하나가 창지개명(創地改名)일 것이다. 우리는 창씨개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왔고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창지개명(創地改名)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끊으려고 우리나라 주요 명산에 박았다는 쇠말뚝은 많은 사회 단체에서 앞장서서 뽑아내고, 창씨개명(創氏改名)으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어 사용하던 이름은 광복 이후 일제가 떠나고 나니 너도나도 옛날의 한국식 이름으로 모두들 스스로 바꾸었는데 창지개명의 경우는 지적부나 지도를 비롯하여 등기부, 호적부, 주민등록부 등 다양한 공부에 기록되어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이나 국민의 관심이 없다보니 다시 되돌리지 못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창지개명(創地改名)은 우리 민족의 정기를 흐리게 하는 점에서 창씨개명(創氏改名)보다도 더 무서운 일인데 우리는 아직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기 위하여 정말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한일 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일제는 수많은 밀정을 보내어 우리의 땅을 샅샅이 조사하였다. 그들은 지형을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백성들의 풍속과 생활, 토속 신앙 등을 면밀히 조사하여 어떻게 하면 민족의 정기를 끊고 원활히 지배할 것인가를 다양하게 연구해왔던 것이다. 빈곤하게 살아가는 조선의 농민들이 농한기에 투전을 즐기는 것을 알고는 화투를 보급하여 패가망신하거나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일제 침략의 한 술수라는 주장이 황당하게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라 일제의 풍수 침략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쓸 때나 집을 지을 때 명당을 찾기 위해 필사적일 정도로 풍수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따라서 조선 민족을 철저히 말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풍수 침략이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래서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의 명산의 지혈에 쇠말뚝을 박는 방법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고, 조선의 지기를 누르기 위해 목침과 석침 묻기(1997년 5월5일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 서울 창덕궁 인정전 뒷산 지하를 굴삭기로 파보니 지하 18m에서 석침 7개를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로나 철로를 내면서 의도적으로 지맥을 끊기, 지혈에 쇠물을 녹여 붓거나 산꼭대기에 구덩이를 파고 며칠간 불을 놓아 뜸을 뜨거나 숯을 묻기, 지역마다 명당 자리에 신사를 지어 조선사람들이 차지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 기를 끊기 위해 건물을 신축하는 일(경복궁 앞에 총독부 건물을 지었고, 창경궁에 장서각을 신축) 등 갖가지 수단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풍수 침략의 차원에서 일제는 한일합방을 하자마자 조선총독부에서 제일 먼저 착수한 사업이 바로 창지개명(創地改名)이었으니 지금이라도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의 악랄하고도 무서운 의도를 파헤쳐서 민족 정기를 바로잡는 일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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