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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한 여름 뙤약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다. 이 따가운 뙤약볕을 삼켜서야 소금이 온다. 시골본가에는 오래 된 장독이 몇 있다. 장독대 뒷줄에는 소금독이 하나 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딱딱하게 굳었다.

얼마나 단단한지 그릇으로 퍼낼 수가 없어서 탁탁 치거나 뾰족한 것으로 후벼야 겨우 한 소금 퍼낼 수 있다. 장마 지난 시골집이 궁금해 찾아왔다. 짐작대로 울안이 온통 눅눅하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허물어진 장독대 앞에 섰다. 

이맘 때 쯤, 장독대 둘레에는 나팔 모양의 붉은 분꽃이 피었었다. 밥 짓는 시간이란 걸 짐작케 한다는 분꽃이 피고 나면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가 시샘이라도 하듯 연이어 피어난다. 그뿐인가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더덕 꽃이 피어나면 장독대가 향기로 가득했는데. 꽃도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무심함만이 떠돈다. 신주단지 모시 듯 쓸고 닦고 매만지시던 어머님의 장독대였다. 어제처럼 어머님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디선가 어머님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에미야, 소금은 간수를 빼고 써야 한다"

해마다, 봉숭아 열매가 툭 터질 때 쯤 소금이 왔던 것 같다. 가다보니 소금 오는 날 가게 됐다. 어둡고 불편했던 시절이니 동네별로 신청해야 소금가마니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신청한 소금이 도착하면 아버님은 천일염 100% 도장이 찍힌 소금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오시고. 어머님이 밑창 구멍 뚫린 빈 독에 천일염을 가득 채우고 나면 종일 출렁이던 신안바다가 빠져나온다.

그렇게 빠져 나온 바닷물은 장독대 바닥으로 흘러내려 더러는 흰 꽃이 피고 더러는 고드름처럼 길게 뻗쳐 있었는데 코를 대면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찝찝하고 약간은 쓴 맛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금이 뭔지도 모르면서 맛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때, 소금은 내게 그저 맛을 내는 식품이었다. 소금이 바다가 바다를 낳고 파도가 파도를 낳는 산고(産苦)의 눈물이란 걸 머리로만 이해했던 철부지였다. 그런 철부지에게 눈물이 뭔지 땀이 뭔지를 비지땀과 고무래질로 본을 보이신 분이 어머님이셨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불평보다 희망을 욕심보다 분수를 지키셨던 분. 마음의'간수'를 빼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신혼 초 며느리에겐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그럼에도 수 천 번의 고무래질로 바닷물을 밀고 고르는 염부처럼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어머님의 소금 같은 미소와 소금 같은 담담한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짜고 쓴 맛이라고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겨선 안 될 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것이 삶의 상처를 씻어내 새 살을 돋게 하는 신비스럽고 오묘한 맛이란 것도 알게 됐다. 세상살이가 단맛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한지 깨닫게 해 주는 게 소중한 '간수'란 걸 삶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손톱으로 '소금 산'을 헤집어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소금 몇 알이 튀어나왔다. 손바닥 위에 소금을 올려놓는다. 하얀 육각형 결정체가 햇빛에 쨍하고 반짝인다. '간수' 빠진 소금의 위용이다. 그의 몸이 이토록 맑고 투명할 수가 없다. 그가 지나온 날을 되짚는다. 버릴수록 투명해지는 한 알의 소금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모진 땡볕과 해풍을 견뎠던가. 긴 장마로 주인의 염전바닥 치는 한숨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에서 무엇을 견뎠으며 마음의 어떤 '간수'들을 버렸던가.

여태까지 먹은 소금양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엔 '간수'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 생각과 행동을 절이지 못할 때가 많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건성으로 대하기도 하고, 작은 상처에도 오래 아파한다.

이 모두 삶의 '간수'를 빼지 못함일 것이다. 한 때는 땡볕이 되고 해풍이 되었던 어머님. 돌아보니 볕과 바람이 있었기에 고통 없이는 소금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장독을 쓰다듬는다. 투박하지만 둥근 독에서 소금 닮은 어머님의 미소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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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헌정회장 "개헌 방향 '정쟁 해소'에 초점"

[충북일보]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 대강당에서 '정치선진화를 위한 헌법 개정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헌정회는 지난해 11월부터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의 방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가 100년 대계 차원의 조문을 만들었다. 이 연구에 이시종 전 충북지사도 참여했다. 정대철 회장은 "정쟁을 해소하는데 개헌의 방향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헌정회가 개헌안 마련에 나서게 된 배경은. "헌정회는 오늘날 국민적 소망인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 해소와 지방소멸·저출생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 유럽처럼 정쟁을 중단시키는 장치인 내각불신임·의회 해산제도 없고, 미국처럼, 정쟁을 중재·조정하는 장치인 국회 상원제도 없다보니, 대통령 임기 5년·국회의원 임기 4년 내내 헌법이 정쟁을 방치 내지 보장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서 헌정회가 헌법개정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동안 헌법개정은 여러 차례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