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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가치가 있든 없든 소중하든 아니든 그를 받쳐 들고 있는 어떤 지지대가 있다. 나무에게는 뿌리가 그것에 해당한다. 뿌리는 웬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지하로, 아주 깊게 아주 길게 뻗으며 자란다. 그러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길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든 길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마치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돌아오듯 그렇게 인내의 시간을 갖는다.

다산 초당을 거쳐 백련사로 가는 내리막길이다. 오늘 우리 일행은 등산도 등산이지만 동백꽃을 보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때가 이른지 숲은 보이는데 꽃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성미 급한 지인은 꽃이 피지 않았나보라며 지레 단정한다. 그 때다 앞서 가던 이가 외친다 "동백꽃이다". 모두의 시선이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 꽃 몽우리에 쏠렸다. 그런데 앞만 보는 바람에 낙엽이 덮여있는 걸 보지 못했다. 순간 '어어' 하며 미끄러지고 말았다.

낙엽이 우르르 흩어졌다. 간신히 땅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이런! 짚은 손 끝,낙엽 속에 손톱만큼 작고 어린 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아직 골짜기엔 찬바람이 이는데 어떻게 이 작은 생명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찬찬이 보니 이 어린것을 품고 있던 것은 낙엽이었다. 어머니처럼 싹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온갖 싹들에게 바람과 추위를 피할 가장 따뜻한 방을 제공하는 그들이다. 싹들은 그의 살에 가슴을 묻고 편히 잠자다 날이 따뜻해지면 드디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바람꽃이며 복수초 노루귀 얼레지 온갖 잡풀들도 그렇지. 바지에 묻은 낙엽을 털어내며 생각한다. 나는 왜 눈에 보이는 꽃만을 보려했을까. 누군가를 위해 주저 없이 따뜻한 가슴을 내어 준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늙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더 두려워하면서 혹여 내 자신 잡풀이 될까봐. 아니 잡풀 취급을 받을까봐 전전 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몇 년 전이다. 오랫동안 기르던 제라늄과 다른 화초를 죽이고 말았다. 내 딴엔 잘 크라고 물을 너무 자주 주었던 모양이다. 한꺼번에 세 개의 화분을 정리하면서 나는 사랑에 실패한 여인처럼 화분 기르기에 자신을 잃었다. 남아 있는 화분을 베란다에 던져두었었다. 그리곤 시원찮아 보이는 화분은 동생네로 보내고 10여년 넘게 꿋꿋이 살아남은 문주란 두 분만 남겨놓았었다. 잡풀도 뽑고 깔끔하게 정리를 한, 두어 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베란다를 보니 화분에 못 보던 자주 빛깔의 풀 하나가 허리를 펴고 바람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분명히 잡풀이라 뽑아냈건만 가장자리에 한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있건만 어느 틈으로 날아왔는지 신기했다. 그는 물 공기 햇볕 작은 공간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풀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들에 비하면 나는 어떤가. 생명체로서의 기본조건인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되어 있는데.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왜 부족하다고 헛헛하다고 끝없이 욕심의 날개를 접으려 하지 않았을까.

낙엽 속에 손을 넣어본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얼핏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느껴진다. 이제 곧 낙엽의 품을 헤치고 새 잎들이 여기저기 피어날 테지. 누군가는 마지막이 낙엽이라거나 자연의 순리에 불과한 거라고 지나쳐 버린다. 아니 썩으면 없어질 그까짓 낙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덮혀 주고 있는 봄 낙엽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꽃만 보려했던 나를 돌아보는. 나와 매일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물들에 나의 체온을 덮혀 주리라는. 그런 실천 속에서 내 자신을 반짝반짝 닦으리라는.

세상 모든 것에는 '그냥'이란 게 없지 싶다. 낙엽이 내게 말한다. 꽃이 그냥 피냐고. 꽃이 피기까지 오래도록 덮혀 주고 닦아주며 기다려야 생명의 꽃잎은 필 것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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