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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05 13:59:28
  • 최종수정2017.11.05 13:59:28

홍성란

수필가

입으면 편하고 촉감이 좋아서 즐겨 입는 옷이 있다. 늘 그랬듯 맨 위 단추부터 채우고 그 다음 단추를 채우려는데 옷감과 구멍만 만져진다. 이럴 리가 있나 고개 숙여 단추를 찾는다. 이런, 단추하나가 달아난 것이다. 순간 웬일인가 싶다. 작년에 세탁 해 놓은 것을 오늘 처음으로 꺼냈는데 어떻게 된 걸까. 기억을 되짚어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애써 어딘가에 단추가 있을 거라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어차피 몸에 걸친 옷이다. 휑한 구멍을 건너 맨 아래 단추까지 채워본다. 단추하나 채우지 않았는데 옷이 겉도는 것 같고 이 빠진 장독처럼 허전하고 안쓰럽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달아난 단추가 마음에서 대롱거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롱 문을 열었다. 장롱 속 유리병에는 모아둔 단추들이 가득 담겨있다. 반신반의, 병속의 단추들을 방바닥에 쏟았다. 형형색색 수많은 단추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콩알만 한 것에서부터 오백 원짜리 동전 또는 그보다 더 큰 오버 단추까지 모양과 색깔도 모두 제각각이다. 마치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단추도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봐도 찾으려는 단추와 똑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다. 어떻게 이 옷을 살려야 하나. 다른 단추로 바꿔 꿰어볼까 찾다가 그중 가장 비슷한 단추를 옷에 꿰어본다.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이번엔 단추를 다 풀어 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잠간이었다. 채우지 않은 옷은 어쩐지 불안정해 보인다.

몇 년 전 작은아이가 엄마 생일이라며 이 옷을 선물했었다. 단순하면서 깔끔한 디자인의 이 옷은 딱 떨어지는 옷 태며 맞춘 것처럼 착용감이 좋다. 더구나 깨알같이 작은 인조보석이 박혀 있는 단추를 채울 때면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일으킨다. 그뿐인가 단정하게 채워진 옷에서 어떤 우아함까지 느껴졌었다. 마치 행복한 삶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단추의 질서는 아름다웠다.

성급히 채우다보면 다시 풀어 채워야하는 게 단추의 숙명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성급히 채우기는커녕 달아 난 단추의 공백으로 옷 전체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불찰은 예견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옷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으려나 바랐다. 무조건 채우기 위해 잃어버린 단추 대신 다른 것으로 달아보았지만 더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단추를 모두 풀어 봐도 마뜩치 않았다. 모두 제자리가 아닌 것이다. 맞지 않는 구두를 억지로 신었을 때 자연스럽지 못함이 따르듯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단추를 잃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숙여 단추에게 절을 했다. 늘 그 자리에 있을거라 믿고 무심히 지나쳤던 게 탈이었다. 떨어지려는 단추를 미리 갈아 끼웠어야 했다. 세탁물 찾을 때 확인했어야했다.

단추를 잃고 나니 단추를 잃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나는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자식으로, 부모로서 살면서 과정보다 결과에, 정체성보다 변화에 인생의 잣대를 세워 세상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잃어버린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한 벌 뿐인 인생의 옷에 얼마나 정성을 들여 살아왔던가. 혹여 나를 잃고 옷에 내가 끌려 다니지는 않았는지. 나의 잘못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는 않았는지. 고개 숙여 단추를 채우듯 내 잘못에 누군가에게 절하는 시간, 작은 사물에게서 나를 돌아본다.

단추를 찾지 못한 채 외출 준비를 한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 다음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단추를 반듯하게 채우고 거울을 바라본다. 채워진 단추처럼 이제야 옷과 몸이 안정이 되어 보인다. 마음도 옷도 모두 제 자리를 찾아 서 있는 것이다. 단정하다. 다시 보아도 순서대로 채워진 단추의 질서가 아름답다. 그런데 옷 한 벌 입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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